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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는 말이다,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것이 빨갱이였다. 학교 화단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는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있었다. 세종대왕, 유관순 동상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다는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더 잘 보이는 곳에 세워졌다. 1년에 한 차례씩 꼬박꼬박 반공웅변대회가 열리면 웅변학원에서 써준 북한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원고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는 했다. 북한에서 날아왔다는 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가져다주면 책받침도, 공책도 푸짐하게 주었다.
잊을만하면 간첩단 사건이 터졌다. 한 가족이 간첩이기도 했고, 심지어 어촌의 한 마을 전체가 간첩이기도 했다. 수지 김이라는 간첩은 홍콩에서 남편을 납치해 북한에 데려가려다 의문사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간첩단 사건 중 상당수는 세월이 한 참 지난 후 재심을 통해 무죄로 뒤집혔다. 수지 김은 간첩은커녕 남편에게 살해당한 억울한 피해자로 밝혀졌다.
간첩 사건은 유독 선거 때 터지고는 했다. ‘간첩’이라는 두 글자는 모든 뉴스를 집어삼켰다. 사회문제든 정치문제든 그 어떤 이슈도 간첩 사건 앞에서는 가십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간첩 사건 뒤에는 어김없이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등 이름은 바뀌었지만 같은 조직인 현 국가정보원이 있었다. 그들이 조작해 낸 간첩단 사건 중 후에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사건만 해도 수두룩 빽빽일 것이다.
나 때는 그랬다. 빨갱이가 가장 무서웠고, 반공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였다. 하지만 어느새 세상이 바뀐 듯했다. 수사기관이 총동원되어, 심지어 재판부까지 하나로 짬짜미로 묶여 무고한 대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넣은 부림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이 흥행에 대성공했다. 빨갱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천만이 넘는 시민이 관람하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그렇게 빨갱이 사냥은 우리 곁을 떠나 도시전설로 남는 듯했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이 바뀌기는 정말 바뀐 것 같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전 대변인인 김민수는 홍장원 전 국정원 제1차장을 가리켜 북한이 보낸 빨갱이라고 했다. 수없이 많은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냈던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의 후신인 국정원의 ‘넘버 투’가 빨갱이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아직은 대통령인 윤석열은 헌법재판소 최후 변론에서 정부를 비판한 모든 행위를 싸잡아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라고 지목한 그들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수십 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레드컴플렉스, 빨갱이 사냥, 반공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빨갱이를 때려잡던 정보기관 이인자가 빨갱이라 공격 받을 정도로 '빨갱이'는 희화화되었다. 대통령이 빨갱이라 지목해도 정신 나간 이의 헛소리 정도로 치부될 정도로 빨갱이의 힘은 희석되었다.
이제 정말 빨갱이는 '라떼'가 된 것 같다. 우울한 현실에서 찾은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지 않을까? 빨갱이가 “라떼는 말이다”의 소재가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