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기업의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될 때 원산지 등의 확인을 요청하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 사전심사 제도'에 대한 관세청의 기업 지원 예산이 ‘사업 중복’을 이유로 편성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품목분류·원산지 판정의 전문성을 갖춘 관세청이 ‘키’를 쥐고 미국 기업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1일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관세청은 올해 8월 ‘CBP 사전심사지원 사업’으로 10억 원의 예산을 기재부에 요청했지만 거절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시행하고 있는 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KOTRA가 시행하고 있는 사업은 CBP 사전심사 신청을 대행하는 수준에 머문다는 점이다. 심지어 올해 8월 관세청 실태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90% 이상이 CBP 사전심사 제도에 대해 ‘모르거나 활용 경험이 없다’고 답하면서 정부 지원책이 ‘유명무실’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CBP 사전심사 제도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수입물품의 품목분류(HS코드), 원산지, 관세평가 등을 사전에 유권해석하는 절차다. 특히 여러 국가의 부품이나 소재를 통합해 하나의 완성품이 된 경우, ‘어느 국가를 생산국으로 볼 것인가’를 기준 짓는 ‘실질적변형기준’이 적용되는 만큼 수출 기업의 관세 규모가 결정되는 절차인 셈이다.
수출업계는 관세청이 사전심사 지원에 직접 나서면 부품 구성이나 제조공정을 조정해 ‘한국산’ 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전략적 컨설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단순한 대행 업무를 넘어 실질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권 의원은 “수출 중소기업들이 정보 부족을 토로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는데, 기업 지원은 사실상 뒷전이고 세금을 거두는 데만 혈안”이라며 “심지어 관세청은 법적 근거도 미비한 관세 체납관리단 신설에 15억 원의 예산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하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치밀하게 검토하고 과·오납을 줄이는 등 실효성 있는 관세 행정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 권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과·오납 환급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잘못 걷어 돌려준 세금이 1조 7,019억 원에 달했다.
권 의원은 "관세청 존재의 이유는 수·출입 과정에서 국민과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먼저 거두고 나중에 돌려주는 등 불합리한 행정관행을 줄여 예측가능한 기업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