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문제 없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의 삶에는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문제로 인해
우리가 자유롭고,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문제를 품고서 골똘히
궁리하고,
궁리하고,
궁리하는 과정을 통해
솔루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국
삶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궁리하고 궁리하면
통하고 통합니다.
‘백성호의 궁궁통통2’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담습니다.
#궁궁통1
중세 때
가톨릭 수도원은
세속의 때가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귀족의 자녀는
수도자가 될 때
수도원에
상당한 액수의
지참금을 냈고,
바깥에서 거느리던
하인들을 데리고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청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멀었습니다.
이때
세속의 때에 찌든
수도원을 개혁하고자
애썼던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십자가의 성 요한’입니다.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틀어
신학적 관점에서
한 명을 꼽으라면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영성적 관점에서
한 명을 꼽으라면
십자가의 성 요한이
뽑힐 정도입니다.
궁금하더군요.
도대체 무엇이
그를
영성의 대가로
만들었을까.
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스페인의 고도(故都)인
톨레도에 가서
그의 자취를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궁궁통2
십자가의 성 요한은
8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붓다는
태어날 때 어머니를 잃었고,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친부(親父)가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어릴 적 아버지를 잃었고,
무함마드는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흔히
부모를
하늘과 땅에
비유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는
절대적 의지처입니다.
하늘과 땅이라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릴 적부터
하늘이나 땅을 상실한
이들은
커다란 ‘존재론적 결핍감’을
안고
자란 것 같습니다.
그런
결핍감이
더 큰 하늘과
더 큰 땅을
갈구하는
거대한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요.
십자가의 성 요한도
그랬으리라 봅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홀어머니를 도우며
갖은 고생을 했습니다.
스페인의
살라망카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서
가톨릭 사제가 됐습니다.
그는
세속에 찌들어 타락한
수도원을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수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톨레도의 차디찬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궁궁통3
그가 갇힌 곳은
가르멜 수도원에 있는
쪽방 감옥이었습니다.
감방의 크기는
3m×2m였습니다.
어른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넓이였습니다.
감방에는
널빤지로 만든 침대와
변기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중세였으니
위생도 불결했고,
수감자인 그는
8개월간
한 번도 옷을 갈아입지
못했습니다.
숱하게
매질과 고문을 당하면서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개혁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그것도,
내부의 가톨릭 동료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성 요한은
두 평 남짓한
감옥을
자신의 광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겪는
숱한 고통과 절망을
자신의 십자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인
‘자아 포기’를 체험했습니다.
당시
감옥을 지키던 간수는
그에게 몰래
펜을 건넸습니다.
성 요한은
그 펜으로
시(詩)를 썼습니다.
그 시들이
오늘날
‘영성의 교과서’로 불리는
『가르멜의 산길』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등의
주춧돌이 됐습니다.
“영혼은
욕망으로 인해
맑음의 소리를 낸다.
마치
종을 외부에서
때리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육체의 갖가지 욕망이
타종하면
영혼은
고요의 소리를 낸다.
타종은
욕망이 영혼에 부딪혀
맛을 잃고
고요에 삼켜지는 현상이다.
그 고요 속에
온전히 깃들면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바람이
구름을 흐르게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매질과 고문,
불결하기 짝이 없는
수도원의 감옥에서,
8개월간
옷도 갈아입지 못한
고통 속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고요에 잠겼습니다.
욕망이
자신의 맛을 잃고서
울리는
영혼의 종소리,
그러한
고요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