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남태령에서 있었던 ‘전국농민연합’의 트랙터 시위 풍경을 담은 기사에 “K팝 실컷 부르고 좋겠다. 빠순이만 신나는 탄핵 파티”라는 댓글이 달렸다. 총 46개의 따봉을 받아 ‘베스트 의견’이 되었길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너만 빼고 파티하니까 빡쳤쥬? 너는 혼자라 아무것도 못하쥬? 끼워주는 사람도 없쥬? 평생 없을 꺼쥬?”라는 답글을 남기고 말았다. 나는 내심 키보드 배틀을 기다렸지만 상대가 내 문장 수준에 놀랐는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아 기대했던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집회는 파티와 같다. 이해관계가 다른 개인이 모두 모여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것이 이미 그 자체로 축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하고 싶다. 영하 9도에서 28시간 동안 서서 K팝을 떼창하는 건 전혀 즐거운 행위가 아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논스톱 K팝 리믹스’에 귀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두 시간이다. 미친 듯이 응원봉을 흔들면서 놀다기 사색이 되어 공연장을 나가는 사람들을 몇년 동안 지켜본 결과다.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본인이 노래방에서 최대 몇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는지 떠올리면 된다. 음악이 아무리 신나도 거리에서의 투쟁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바람직한’ 투쟁과 애도가 존재할 수 있을까? 세상을 향해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분노가 가시지 않는 것이 투쟁심이며 가시덤불이 온몸을 짓이겨도 아픈 줄 모르는 것이 애도인데 투쟁과 애도에 모범답안이 있다고 쉽게 말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목적을 갖고 있을까.
투쟁과 애도에 모범답안 있을까
3년간 출근길 지하철에서 탑승 시위를 한 박경석은 촛불집회처럼 온건한 시위를 하면 되지 않냐는 협박 같은 질문에 ”투쟁 방식에 옳고 그름을 미리 전제하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투쟁은 온건함, 무해함이 아니라 그 주체와 목적, 규모, 정세에 따라 적합성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서울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한남동을 거친 투쟁의 여열이 지난 한 달간 우리 사는 곳곳의 싸움들을 데웠다. 나는 농한기의 트랙터가 서울의 가장 비싼 땅을 누비는 것을 봤고, 혜화동의 침묵시위에 비장애인이 동참한 것을 봤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옥상에 서 있었던 소현숙과 박정혜를 봤다. 각자 다른 방식의 투쟁이지만 이들의 싸움은 모두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싸움으로 애도하고, 슬픔으로 투쟁하는 그들을 보면서 어쩌면 투쟁과 애도는 서로 구분할 수 없는 연결된 개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밑에 일어난 여객기 참사로 ‘공식 애도 기간’이 제정되면서 연말의 수많은 계획이 중단되고 무산되었다. 내란의 주범 감싸기에 급급한 여당의 추모 현수막이 거리를 온통 휘감고 있었다. 세월호, 이태원, 오송, 화성…. 사람이 죽어도 고개 한번 숙인 적 없던 이들의 메시지에서 이 참담한 슬픔을 이용해 소란을 잠재우려는 질 낮은 의도가 읽혔다.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는커녕 늘 ‘애도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경고만 들어왔던 참사 유가족들은 이 슬픔과 싸움이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말하듯 가장 먼저 집회의 자리에 돌아왔다.
폭염경보가 내린 작년 어느 여름날. 나는 길에서 ‘오체투지’를 목격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에 자신의 온몸을 지지던 이들은 충북 청주에 살던 발달장애인 일가족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던 ‘전국발달장애인부모연대’였다. 이들의 투쟁 방식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탈진할 것 같은 고행에 가까웠다. 나는 맨 뒷줄에서 이들을 보조하는 활동가에게 왜 이렇게 힘든 방식으로 투쟁을 하냐고 물었다. 그는 벌겋게 익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에 비하면 이 모습은 오히려 고상한 거죠.”
분노와 슬픔에 상상력을 더하기
세상으로부터 멀어진 존재들일수록 가장 처절한 방식으로 싸운다. 누구도 관심을 준 적 없던 이들의 투쟁에 과연 어떤 답안이 존재할 수 있을까. 모범적인 투쟁이란 존재하지 않고, 정치적이지 않은 애도 또한 없다. 그 둘을 분리하고 규격화시키라는 요구야말로 가장 불온한 정치 행위다. K팝을 투쟁가로 삼은 이들을 비아냥대고, 돌 바닥에 칠해진 래커의 복구 비용을 걱정하고, 트랙터에 쓰인 문구의 저의를 넘겨짚고, ‘정상인’에게 피해를 주는 장애인은 욕을 먹어도 싸다고 말하고, 피해자는 피해자답기를 원하는 이들은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분노가 슬픔이 되고 그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다시 기쁨 속에서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이 깊숙한 연대의 경험을.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 더 과격한 싸움에 동참하기 위해 이 슬픔의 어깨춤은 그만 추고 싶다. 도대체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내 어깨를 봐, 탈골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