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매일 의존하고 있는 다양한 생성형 AI.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로서는 이들이 자신의 생계를 위협할 것이라는 실존적 불안보다 자신의 글과 그림을 빼앗겼다는, 그러니까 자신들의 과거 작품이 내 미래 작품의 자리를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 재료로 쓰이는 상황을 목격했을 때 큰 허탈함을 맛본다.
이 울분을 토할 곳은 법원. 전 세계적으로 수도 없는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복제돼 기계 학습된 채 그 자체가 다시 오픈소스 모델들로 유통돼버리고 있는 만큼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겠지만, 창작자의 기운을 뺏는 일을 막는다는 면에서 어떤 질서라도 만들어 둬야 할 세기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독일 법원은 최근 오픈AI의 챗GPT가 가사를 무단 사용해 저작권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독일 법원은 특권 연구 기관이라는 오픈AI의 입장을 기각하고, 법적으로 데이터를 퍼갈 수 있더라도 이것이 기사를 출력하는 걸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또한 덴마크 법원은 이번 주 영상물을 맥락 없이 발췌·재가공해 무단 공유한 행위가 ‘저작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형사 유죄 판결을 내렸다. 권리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는 것. 예술 작품의 맥락을 벗어난 이용이 배우와 감독이 지키려던 예술적 온전성을 침해한다는 법원의 판단이었다.
최근 쇼츠만 봐도 허락 없이 짜깁기하고 그것도 모자라 AI로 조잡하게 생성한 콘텐츠가 난무한다. 원작자의 의도를 왜곡하고 배우의 명예를 훼손하는 ‘무맥락 공유’와 ‘AI 슬롭’ 때문에 형사범이 될 수도 있다니 의미심장한 판결이다.
원작자를 존중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원동력. 비단 AI 때문에 두드러진 숙제는 아니다. 이미 모든 것이 연결되고, 또 모든 것이 디지털로 복제 가능해진 이래, 그 분기점마다 사람들은 질서를 찾아왔다. 그렇게 음악도 동영상도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 번듯한 사업이 만들어지고, 또 그 사업을 기회 삼아 활짝 피어나는 이들도 늘어났다.
지금은 바야흐로 속칭 탈진실의 조작된 콘텐츠 시대. 이 시대에 걸맞은 이름의 해법도 있다. 윤리적 라이선싱이라는 개념인데, 기술이 지식재산권을 사용할 때 해당 권리자로부터 동의를 얻고 합당한 보상을 지급하는 등 법적·도덕적 책임을 준수하자는 것이다.
배우 매슈 매코너헤이가 투자한 일레븐랩스라는 음성 AI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명사들의 음성을 구매해 심지어 광고 등에도 쓸 수 있는 AI 명사 음성 마켓플레이스를 금주 발표했다.
내 목소리가 무단이 아니라 합당한 보상과 함께 쓰인다면, 힘들게 녹음 스튜디오에 가지 않아도 더 널리 내 목소리를 들리게 할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 터다. 매슈는 자신의 목소리로 외국어 버전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도 이를 활용하려 한다. 기술이 없다면 힘들었을 용도다.
이처럼 기술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 동시에 그 기술로 인해 득을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기술이 사회에 받아들여져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결국 제도가 중요한 셈이다. 하지만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사진 스톡 서비스가 제기한 소송에서 AI가 복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으며, 독일 판결에 대해 오픈AI는 아마도 항소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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