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주도의 안보 질서 체제에서 평화를 누려온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속속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의 영토 확장 야욕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으로도 번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하면서 지금까지의 안보 협력과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27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 알프스 바르세스의 제27산악보병여단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6년 자발적 청년 군복무제를 시행한다고 공식화했다. 그는 “동맹국들이 유럽에 가해지는 위협에 대응해 전진하고 있다”며 “힘이 법보다 우선하고 전쟁이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지금, 두려움도 준비 부족도 분열도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위험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자발적 군복무제 대상은 18~19세 청년이다. 지원자는 10개월간 유급으로 복무하게 되며 복무 지역은 프랑스 영토로 한정한다. 내년 3000명을 시작으로 2030년 1만 명, 2035년까지 5만 명으로 증원할 계획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1996년 폐지한 의무 복무 제도를 부활시킬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각에서는 자발적 복무제 도입이 징병제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우리 유럽 파트너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4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유럽 국가들이 속속 재무장에 나서는 상황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징병제 부활이나 여성 대상 징병, 전 국민 군사훈련 도입 등 다양한 병력 확충이 도미노 현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동유럽과 북유럽 지역에서 시작해 최근 들어서는 프랑스나 독일 같은 후방 국가까지 이어지는 양상이다.
대표적으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는 7월 한국산 K2 전차, K9 자주포 등 기갑 전력을 대거 수입했다. 또한 모든 성인 남성이 일정한 군사훈련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크로아티아는 10월 징병제를 18년 만에 부활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내년에 19세가 되는 2007년생 징집 대상자들은 올 연말까지 징병 검사를 받고 내년 1월부터 2개월간 기본 군사훈련에 소집된다. 징병제를 시행 중이던 덴마크는 7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징병 대상에 넣는 새 제도를 시행하고 병사의 의무 복무 기간도 기존 4개월에서 11개월로 늘렸다. 덴마크는 일단 남녀 모두 지원병으로 받되 모자라는 병력은 추첨에 따른 징병으로 채우고 있다. 이전에는 남성만 징병 추첨 대상에 포함됐는데 여기에 여성을 추가한 것이다.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독일도 유사시 현행 모병제를 징병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는 중립국인 스위스조차 30일 여성을 대상으로도 의무 복무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친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러시아의 잇따른 군사 도발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현재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드론으로 추정되는 비행 물체가 군사기지와 원자력발전소·공항 등 기간 시설 주변에 빈번히 출몰하는가 하면 공항과 물류센터 등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군은 유럽에서 조금씩 발을 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에서 미군을 감축하기 시작했다. 현재 유럽 내 주둔 중인 미군은 8만 4000여 명으로 추산되며 미군 유럽 주둔 사령관은 유럽연합군최고사령관(SACEUR)을 겸직한다.
안보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유럽 내에서 ‘군사력 강화’를 주장하는 여론은 확산하는 분위기다. 다만, 내부 반발도 여전히 많다. 파비앵 망동 프랑스 국방참모총장은 최근 한 연설에서 “프랑스의 가장 큰 약점은 전투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러시아와 벌어질 수 있는 전쟁에서 우리 자녀들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전쟁광의 논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스위스의 여성 징병제 실시안도 재정난 우려 등 현실적 문제들로 인해 실제 법안 통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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