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돼지고기는 예전보다 확실히 더 맛있어졌다. 돼지고기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지금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는 수십년 전의 고기와는 분명히 다르다.
이는 돼지가 육종 실험에 유리한 가축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돼지는 보통 생후 6개월에 도축된다. 반면 소는 24개월 이상 사육한 뒤에야 도축된다. 이는 육종을 시도하고 성과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특정 유전형질을 가진 수퇘지를 교배에 사용했을 때 그 자손이 도축 연령이 되기까지 불과 반년이면 충분하다. 새로운 형질을 실험하고 평가해 다음 세대에 반영하는 세대교체 주기가 훨씬 빠르다. 결과적으로 돼지는 맛, 조직감, 지방 함량, 사료 효율, 성장 속도 등 다양한 기준에서 지속적으로 개선이 가능하다. 이렇게 빠른 육종 개량은 돼지고기를 해가 갈수록 더 맛있고 고급스럽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돼지고기가 전보다 저지방으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24년 2월9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는 오늘날 미국·유럽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가 1980년대의 고기에 비해 지방이 20∼50%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대의 사육용 돼지들은 평균 체지방률이 약 14%다. 사람으로 치면 근육질이다. 본래 돼지는 에너지를 지방으로 잘 저장하는 동물이지만 짧은 사육 기간과 함께 소비자의 저지방 선호에 맞춰 유전적으로 지방 비율을 낮춘 품종이 주로 사육되면서 점점 더 날씬하게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지방이 너무 적은 돼지고기가 문제라는 인식도 생겼다. 지방 함량이 낮은 고기는 자칫하면 퍽퍽하게 조리되기 쉽기 때문이다. 사실 지방은 단순한 열량 공급원이 아니라 고기에서 풍미와 촉촉함, 부드러움을 담당하는 중요한 요소다. 고기 맛의 핵심은 근육보다 오히려 지방에 있다. 지방 속에는 고유의 향기 분자들이 농축돼 있고, 고기를 구울 때 나는 고소한 향과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식감도 지방 덕분이다. 요즘은 적절한 지방이 들어간 고기가 오히려 미식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돼지고기에 비타민B군이 풍부하고 철·아연·셀레늄 등의 미네랄도 다량 들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돼지 지방의 영양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돼지 지방은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은 편으로 그중 절반 이상이 올리브유에 많이 들어 있다는 올레산이다. 돼지고기 지방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고 쇠고기보다 깔끔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돼지 지방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최근에는 지방의 풍미를 강조한 품종 개량도 활발하다. 영국 ‘버크셔’ 품종을 국내 환경에 맞게 개량한 ‘버크셔K’는 근내지방(마블링)이 풍부하고 탱탱한 육질로 씹는 맛이 좋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개발한 ‘난축맛돈’도 마블링이 잘 형성돼 살살 녹아내리는 지방 맛이 매력적이다. ‘우리흑돈’ 역시 재래돼지와 ‘듀록’의 장점을 결합해 지방이 탄탄하고 육즙이 풍부하다.
서울 강서구에 문을 연 흑돼지구이 식당 ‘칠흑’에서는 이들 세가지 흑돼지고기를 비교하며 시식할 수 있다. 얇게 썬 흑돼지고기 앞다리살을 불판에 살짝 구워 자염과 새우젓을 곁들여 먹다보면 칠흑같이 깊은 풍미를 낸다는 식당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 시대 돼지고기의 진화를 마주하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