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만간 유전자변형(GMO·Genetically-Modified Organism) 감자가 수입돼 우리 식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 농업기업 심플로트가 개발한 이 감자는 최근 농촌진흥청의 환경 위해성 평가를 통과했고, 식약처의 식품 안전성 심사만 남겨두고 있다. 이 감자는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외부 유전자를 감자 유전체에 도입해 만든 것으로, 썰어서 장시간 보관해도 갈색으로 변하지 않고, 기름에 튀겨도 발암물질이 생성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GMO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수출하는 미국의 통상 압박이 점점 거세지는 상황에서, 향후 심플로트 감자를 포함한 다양한 GMO 농산물의 수입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와 농민·소비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외국산 GMO 국내 넘쳐나지만
국내에선 GMO 재배도 못해
미·일 허용 유전자 교정도 금지
독자 기술 개발하고도 사장돼

실상을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GMO를 가장 많이 수입·소비하는 나라 중 하나다. 주로 사료용으로 수입하지만, DNA가 남지 않는 가공 원료로 사용되는 대두유·전분 등은 GMO 표시 없이 대량 유통된다. 결국 국내 소비자들 대부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매일 GMO 유래 식품을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관련 국내법에 의해 GMO 농작물의 야외 재배가 사실상 금지되어 있어 소비되는 GMO는 모두 수입산이다.
GMO 연구에 수 조원 투자만
사실 우리 정부도 지난 20여 년 넘게 GMO 종자 개발에 수 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했다. 농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투자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상업화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미흡한 연구 성과 때문은 아니고 국내의 높은 규제 장벽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로 제주대에서 개발한 제초제 내성 잔디가 있다. 이 잔디는 잡초 관리를 위해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고 잘 자라는 GMO로서, 골프장·축구장 등에 폭넓은 수요가 있다. 잔디는 식품이나 사료가 아니어서 허가받기 쉬울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여러 정부부처가 다양한 안전성 평가 자료를 요구했고, 심지어 해양수산부 산하기관은 물고기에 잔디를 먹였을 때 독성이 없는지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결국 이 잔디는 규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사실 미국에서도 GMO가 철저히 규제되고 있다. FDA·농무부·환경보호청 산하 기관들이 식품 안전성과 환경 위해성을 면밀히 검토한다. 인허가에는 보통 10년의 시간과 약 2000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결국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소수의 대기업만 GMO 종자를 개발할 수 있다. 최근에는 GMO의 대안으로 유전자교정생물체(GEO·Genome-Edited Organism)가 각광받고 있다. GEO는 크리스퍼 같은 유전자가위 기술로 외부 유전자 없이 식물 자체 유전자에 정밀한 변이를 유도해 만든다. GEO의 변이는 자연발생하는 돌연변이와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GMO와 달리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그 결과 해외 곳곳에서 GEO 농산물이 이미 널리 재배·판매되고 있으며, 관련 분야 창업과 고용도 활발하다.

한국은 한때 GEO 개발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일례로 첨단기술 분야 트렌드를 소개하는 격월간지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2016년 ‘10대 혁신기술’ 중 하나로 식물 유전자 교정을 꼽으며 이 분야 선두주자로 서울대 연구진을 지목한 바 있다. 한동안 국내에서 창업과 투자도 활발해서 2023년 7월에는 국내 21개 관련 분야 스타트업들로 구성된 ‘유전자교정 바이오산업발전 협의회’가 출범하여 규제 완화를 위해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들 기업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도 있었다. 지플러스 생명과학은 세계 최초로 비타민 D가 포함된 GEO 토마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필자가 창업한 기업 툴젠도 크리스퍼 기술로 외부 유전자 도입 없이 감자의 갈변을 억제하고 발암물질 생성을 차단한 GEO 감자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GEO 토마토와 감자는 국내법상 여전히 GMO로 간주되어 국내 재배나 판매가 불가능하고, 사실상 수출도 할 수 없다. 해외에서 만든 GMO 감자는 수입하겠다면서, 국내에서 만든 GEO 감자와 토마토는 굳이 GMO로 묶어두고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유전자 교정, GMO와 달리 봐야
국내법이 GEO를 GMO와 동일하게 간주하는 현실은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GEO의 재배와 판매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해외 국가들과의 통상 마찰이 불가피하다. 둘째, GMO는 외부 유전자가 삽입되어 있어 검출이 가능하지만 GEO는 외부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검출이 불가능하다. 구별할 수 없는 것을 실효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렵다. 셋째, GEO를 개발하고 있는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과도한 규제에 발목 잡히고, 그 결과 일자리도 사라질 수 있다. 넷째, 과도한 규제 때문에 농민과 소비자의 선택권이 침해된다. 농민은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성이 높은 종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소비자는 건강하고 안전한 식품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GEO와 GMO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규제를 적용할 경우,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심각하다. 고온·가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등 기후위기의 현실 속에서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종자 개발 없이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시대적 변화를 더는 외면하지 말고, 국내 기술과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동시에 기후변화와 농업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김진수 KA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