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고점론에 한 달 간 10조원 증발…K증시, 미·중 경기에 달렸다

2024-09-27

코스피 부진, 향후 전망은

또다시 찾아온 반도체의 겨울이냐, 아니냐. 곳곳에서 포착되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 부진·공급 과잉 진단과 인공지능(AI) 거품론, 미국·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겹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 한 달간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식을 10조원가량 순매도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유가증권시장 전체 영업이익의 29%를 차지하는 만큼 양사의 시장 흐름은 한국 증시 성적과 직결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위기론이 시기상조라는 진단도 나온다. 마이크론 등 반도체 기업이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데다 미국 경기가 연착륙할 가능성 또한 높아서다. 반도체 고전론에 설왕설래가 오가는 가운데 오는 삼성전자 3분기 실적이 반도체 시장의 흐름은 물론 한국증시의 방향 또한 결정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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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달 동안 외국인은 한국 삼성전자를 8조원 넘게, SK하이닉스를 1조원 넘게 팔아치웠다. 이 영향으로 지난달 26일 7만6100원이었던 삼성전자 주가는 27일 6만4200원으로 주저 앉았다. 그나마 25일(현지시간) 미국 마이크론의 예상 밖 호실적으로 반도체주가 급등한 게 이 정도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서 발을 빼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강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증시와는 달리 한국 증시는 게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5일에는 중국 인민은행의 금리 인하로 글로벌 증시가 대부분 상승했지만 코스피만 1% 넘게 하락했다. 통상 중국의 금리 인하는 중국 내수시장 활성화에 따른 수출 확대 기대감으로 대부분의 국가에 호재로 작용한다.

미·중 금리 인하 호재에도 코스피 게걸음

대(對)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은 대표적인 수혜 국가다. 그럼에도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35.36포인트(1.34%) 내린 2596.32에 마감했다. 코스닥도 8.05포인트(1.05%) 내린 759.30으로 약세를 보였다. 이 같은 한국 증시의 부진 이면에는 ‘반도체 고점론’이 자리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4분기를 정점으로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할 것이란 우려다. 스마트폰이나 PC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예상보다 부진해서다.

실제 최근 반도체 업황은 한풀 꺾이고 있다. 지난달 산업연구원의 반도체 업황 전문가 서베이지수(PSI)는 156을 기록했다. 여전히 기준치인 100을 웃돌지만, 6월 185까지 올랐던 반도체 업황 PSI는 이후 하락 추세다. 이런 가운데 모건스탠리가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업황이 2026년까지 과잉 공급 상태에 처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외국인 매도세에 기름을 부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최근의 외국인 매도세가 패닉셀(공포에 의한 매도)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의 ‘투기등급 회사채’ 가산금리는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통 투기등급 회사채 펀드에서 자금이 유출될 때 한국 등 신흥국에서 패닉셀 경향을 보이는 데, 투기등급 회사채 가산금리가 낮다는 건 뚜렷한 자금 유출은 없다는 얘기다. 최근 논란이 된 인공지능(AI) 거품·고점론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본 노무라증권도 최근 보고서에서 HBM 공급 과잉 등 메모리 시장에 대한 우려가 일부 과장됐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25일 마이크론의 호실적 덕에 매도세가 일단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상황을 낙관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국제금융센터는 ‘한국 수출 증가율 둔화 우려 제기’ 보고서에서 중국 기업의 반도체 생산과 공급이 늘어나 한국 반도체 수출 증가세도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관건은 미국과 중국 경기가 어디로 가느냐다. 미국은 경기 위축과 노동시장 냉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연준이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을 단행한 이유도 경기 둔화 조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미국 민간경제조사기관 컨퍼런스보드가 19일(현지시간) 발표한 8월 미국 경기선행지수(LEI)는 전월보다 0.2% 떨어진 100.2로 6개월 연속 하락했다. 미국 공급자관리협회(ISM)가 미국 20개 업종 400개 회사를 대상으로 산출하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2로 5개월 연속 위축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8월 고용 증가 폭은 14만2000명으로 7월보다는 늘었지만 직전 12개월 평균인 20만2000명에는 미치지 못한다. 연준의 빅컷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기가 기대 만큼 살아나지 못할 경우, 실물 경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AI 거품론도 ‘시기상조’ 의견 지배적

중국은 내수와 부동산 시장 침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8월 소매판매(전년동기 대비 2.1%)와 산업생산(4.5%)이 예상치를 밑돌았고, 실업률도 5.3%로 전월 대비 0.1%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8월 주택가격은 5.3%나 급락하며 9년 만에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그러자 정부가 최근 ‘5% 성장 목표’를 위해 연일 경기부양책을 쏟아내면서 내수 활성화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약발이 먹힐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구리값도 참고할 만하다. 자동차의 전동화(電動化) 등으로 최근 구리값과 한국 반도체 수출금액 지수는 날이갈수록 긴밀해지고 있다. 2021년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잘 보여주 듯, 이제 자동차는 움직이는 가전제품으로 변신하고 있다. 굳이 전기차 뿐만 아니라,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조차 웬만한 노트북보다 더 큰 디스플레이 화면을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가전제품은 물론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며 구리·은 같은 핵심 전도체의 가격이 상승할 때마다 반도체 가격 상승 흐름이 관측된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 구리 위원회 코칠코는 10일(현지시간) 올해 구리 평균 가격 전망치를 파운드당 430센트(5월 추정치)에서 418센트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과 중국의 제조 업황이 위축되며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데 따른 영향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2025년 평균 가격 전망치는 파운드당 425센트로 유지했다. 이를 감안하면 외국인의 반도체 매도 공세는 좀 더 이어질 수 있겠지만, 곧 끝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다음 달 삼성전자의 실적 공개가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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