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여자대학교 임도연 교수

[동양뉴스] 최근 장염으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던 적이 있다. 그때 병원에 있으면서 느꼈던 게 말투의 차이였다. 나는 둔한 성격이라서 누군가 날카롭게 말하는 거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간호사 선생님들의 말투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둘러보면 비교적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상대적으로 매우 어린 환자에 속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한 간호사 선생님이 툭툭 던지는 말투로 반말을 섞어 말씀하셨다. 묘하게 기분이 안 좋았고, 어느새 나도 그 선생님께 딱딱하게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어느 날은 항생제에 부작용이 일어나서 갑자기 팔 전체가 간지럽고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길래 바늘을 빼기 위해 간호사실에 찾아갔었다. 보통의 경우 바로 빼 주시지만, 그 선생님은 “갑자기 왜? 원래 안 그랬잖아”라며 귀찮은 듯이 나에게 되물었다. 안 그래도 간지럽고 고통을 참고 있던 나는 너무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던 경험이었다.
물론 모든 분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다른 선생님들은 바쁜 와중이었지만, 친절하셨고, 이른 새벽이었지만 이름을 부르며 “빨리 일어나셨네요~”, “잘 잤어요?”라는 인사 한마디로 사람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래서 그 선생님들이 오면 내 말투도 부드러워졌고, 더 예의를 차리게 되었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였다. 다른 환자분들도 기분을 상하게 했던 그 선생님께는 불평을 하시기도 하고, 같이 툭 던지는 말투로 하시다가 다른 선생님이 오시면 말투가 바뀌시는 분도 계셨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내 주변의 환경은 내가 만드는 것임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긍정적인 변화도, 부정적인 변화도 내가 변화시킬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 읽었던 ‘나이토 요시히토’의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는 책이 있다. “말투 하나”라는 제목이 나를 끌어들여 구매해서 읽었던 책이었다. 말투의 심리에 대한 40가지 기술을 설명하는 책이었는데 사실 읽고 나서는 거창하게 쓰여있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뻔한 기술이었다. 실천이 어려울 뿐이었다. 그리고 덮어 두었던 책이었는데, 병원에서 이 책의 내용이 생각났었다.
“누구나 정중하게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언어에는 상대방과 관계에 따라 사람들의 말투가 변화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윗사람에게는 정중하고,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거나 직책이 낮은 사람에게는 거만하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중한 말에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나였어도 오히려 정중하지 못하고 잘난 척을 하거나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이 드는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을 오히려 신뢰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책의 내용처럼 그 사람이 쓰는 말투는 그 사람의 인격이며, 그 사람이 쓰는 말 자체의 신뢰도를 결정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함을 다시 생각하고 정중한 사람이 되어 보자는 결심이 들었다.
성경 말씀에도 “물이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라는 잠언의 말씀이 있다. 내가 상대를 대하는 데 있어서 생각하게 만드는 말씀이다. 내가 싫어하거나 불편한 사람을 상대할 때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분명 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이 전달될 것이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상대할 때 분명 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이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다른 누군가의 태도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말투 하나의 변화라고 하지만 이 말투의 변화는 그냥 기술로써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마음, 배려심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감정이 들어가는 대화가 아닐 때도 정말 그 사람을 낮게 생각하지 않고 겸손할 때 정중한 말투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것은 말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건강하게 가꾸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를 존중할 수도, 상대를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비로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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