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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이상 투자 시 특혜를 주겠다는 미국의 외국인 투자 조건은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안 장관은 우리 기업의 10억 달러 투자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바이든 정부에서 진행됐던 반도체·배터리 보조금 정책이 유지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 장관은 26일 미국 워싱턴 D.C. 출장을 위해 찾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현재 10억 달러 이상이라는 투자 특혜 조건이 발표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그간 투자한 것과 앞으로 투자할 부분을 고려하면 충분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객관적 기준에 입각한 투자 패스트트랙 절차 신설 △10억 달러 이상 투자에 대한 환경 평가 신속 처리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국 우선주의 투자 정책’에 서명했는데, 관련해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투자할 의지와 능력이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안 장관은 그러면서 “기업들의 투자에 대해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이 상당히 다각적으로 투자 전략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안 장관은 26~28일 방미를 통해 대미 투자 확대 조건으로 반도체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지급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바이든 정부 당시 약 8조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받기로 약정했지만, 트럼프 정부가 이를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최종 수령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현대차 역시 IRA 보조금 축소, 자동차 관세 부과 등 불확실성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에 안 장관은 방미를 앞두고 24일 현대차그룹 고위 경영진과 비공개 회동을 하는 등 재계 고위층과의 개별 접촉을 진행하며 민관 공동 대응 전략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안 장관은 산업·에너지 전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방안을 강구한다는 계획이다. 안 장관은 “이번 출장에서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을 비롯한 행정부 핵심 인사들을 만날 계획”이라며 “조선·에너지·첨단산업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한미 양국 산업 생태계가 같이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부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미국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한국을 꼬집어 언급한 만큼 주요한 협상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안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과제인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에 대해서는 “협의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정부는 한미 간 협상 플랫폼 구축도 꾀한다는 계획이다. 안 장관은 “한 번의 협상으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양국 간 협의체를 구축해 앞으로 계속해서 (관련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번에 해당 부분에 대한 협의를 중점적으로 진행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