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선택이 겹치자, ‘나락’이 다가왔다···앉은 자리 떠날 수 없는 넷플릭스 ‘악연’

2025-04-09

악인의 기준은 무엇일까. 재영(이희준)은 얼굴에 짜증이 배어있지만, 평범해 보인다. 사채를 내서까지 코인에 투자하는 것은 무절제한 것일 뿐, 악한 행동은 아니다. 빌려 간 돈을 언제 갚을 거냐고 조심스레 묻는 친구에게 “왜 이렇게 사람을 불편하게 하냐”고 오히려 성질을 내는 것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사채업자에게 끌려가 한 달 안에 1억3000만원을 갚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은 게 바로 전날의 일이기 때문이다. 극도의 스트레스 앞에 누구나 히스테리를 부릴 수 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질이 나쁘구나,’ 경계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병원에서 가해 차량 차주에게 은근슬쩍 현금을 뜯어낼 때가 그렇다. 집에 들러 아버지의 옷가지를 챙기다가 아버지의 시계를 “오~ 롤렉스”라며 훔쳐 낄 땐 혀를 끌끌 차게 된다.

그러다가 재영이 아버지의 5억짜리 생명보험 증서를 보고 눈을 빛낼 땐 더는 관망하듯 볼 수가 없다. ‘협박을 받고 있는 데다가 윤리 의식이 희박한 재영이라면···.’ 패륜도 저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6부작 드라마 <악연>은 서로 다른 꿍꿍이를 숨긴 6인의 인물이 얽히고설키며 더한 구렁텅이로 내달리는 범죄 스릴러다. 중국동포 길룡(김성균)과 공모해 교통사고를 가장해 아버지를 살해하려던 재영은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뒤 인근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극은 ‘아버지는 왜, 어떻게 죽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전개된다.

영화 <검사외전>(2016), <리멤버>(2022)의 이일형 감독이 동명의 웹툰 원작(작가 최희선)을 각색하고 연출했다. 이 감독이 시리즈물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만난 이 감독은 <악연>은 “악한 선택을 한 사람이 그로 말미암아 또 다른 악한 사람을 만나게 되며 뻗어 나가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악연> 속 인물들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선을 이미 넘었거나, 넘으려는 인물들이다. 살인교사·시체유기·방화·공갈 등 그 수위가 높지만, 드라마는 범죄 행각을 쾌락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이 감독은 “이 인물이 ‘왜 이런지’를 설명하기보다, 그가 악한 선택을 할 때 ‘저렇게 행동해도 놀랍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성공한 한의사인 상훈(이광수)은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다. 술을 마신 채로 운전을 하지 않으려다가 결국 운전대를 잡은 그는 차로 누군가를 들이받게 된다. ‘신고를 해야 한다’는 이성과 ‘알려지면 끝장이다’라는 본능, ‘음주운전을 안 하려고 했는데’라는 억울함 섞인 후회가 교차할 때의 막막함이 전달되면서다. 악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순간의 옳고 그른 선택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피해자에게는 강인함을 부여했다. 의사인 주연(신민아)은 범죄 피해 트라우마를 지닌 채 성장한 생존자다. 원작 웹툰에서는 연인에게 의존하는 성향이 보였던 캐릭터다. 드라마에서의 주연은 그렇지 않다. 이 감독은 “너무 수동적이거나 눈물만 짓는 캐릭터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해자를 변호하지 않고, 피해자를 동정하지 않기에 시청자는 장르적 즐거움에만 집중할 수 있다. 각 회차가 잘 만들어진 단편 심리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박해수, 이희준, 신민아, 이광수, 공승연, 김성균 등 캐스팅이 화려하지만 매 회차 한두 명의 인물에게만 집중하며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조명했다. 악연의 영어 제목은 ‘Karma(카르마·업보)’인데, 과거와 현재에 업보를 쌓아 온 인물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궁금하게 한다.

각본을 쓰는 데 초고에만 6개월, 이후 수정에 3~4개월을 들였다고 한다. “영화를 보듯 6부작을 한 자리에서 쭉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고심한 덕택일까. <악연>은 한국에서 시리즈 부문 1위는 물론, 공개한 지 3일 만에 비영어권 부문 글로벌 5위에 오르는 등 순항 중이다. 이 감독은 “한 번 틀면 끝까지 보게 된다는 반응이 가장 기분 좋다”며 “촘촘히 얽혀 있는 굴레를 끝까지 즐겨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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