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다시 '김치프리미엄'이 등장했다. 주요 거래소에서 테더(USDT)는 1520원 안팎에 거래되며 해외 대비 6% 이상 급등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유에스디코인(USDC)도 비슷한 수준 프리미엄을 보였다. 비트코인 역시 국내에서는 1억6400만원대, 해외 거래소에서는 1억5400만원대에 거래되며 약 6%의 격차가 났다.
김치프리미엄은 국내 시장의 높은 수요로 인해 해외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을 말한다. 과거에는 투자 열기가 과도하게 쏠릴 때 김프가 흔하게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 현상은 좀 다르다. 이전엔 '돈이 몰려서' 생긴 과열의 징후로만 보였다면, 지금은 '돈이 빠져서' 생긴 유동성 공백도 드러났다.
실제 지난 11일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월드리버티파이낸셜유에스디(USD1)가 업비트에서 1만원까지 급등하며 기준가(1달러) 대비 600% 이상 급등했다. 테더도 빗썸에서 환율기준가 보다 3배 이상 높은 5570원까지 급등했다. 해외 거래소 변동폭은 1% 내외에 불과했다. 국내 거래량이 줄고 시장조성자(MM)가 부재한 상황에서 소수 주문만으로도 가격이 급격히 치솟았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과열이 아닌 취약성의 신호다.
해외 주요 거래소는 상시 시장조성자(MM)를 두어 급격한 주문에도 가격을 흡수·복원한다. 하지만 국내는 규제상 시장조성 행위가 사실상 금지돼 있다. 외국인 투자자 진입이 막혀 있어 자연스러운 차익거래를 통한 가격 조정도 불가능하다.
유동성 부족은 자금의 해외 유출로 이어진다. 올해 1~9월 한국 5대 거래소를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은 124조3000억원 규모다. 규제가 촘촘하고 거래 환경이 불리한 국내 시장을 떠나, 투자자들이 더 유연한 해외 거래소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김프의 재등장은 단순한 과열이 아니라 닫힌 시장의 구조적 경고다. 이제는 유동성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할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