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K콘텐츠 IP, 활용 전략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2025-10-13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K콘텐츠가 마주한 새로운 국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연관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열린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세계적 주목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핵심 지식재산(IP)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통적인 콘텐츠 강국인 미국과 일본은 콘텐츠IP를 활용한 비즈니스를 통해 콘텐츠의 경제적 성과를 극대화한다. 우리는 좋은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고, 콘텐츠도 잘 만들지만, 이러한 사업적 확장성을 갖는 IP를 확보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비즈니스를 전개하지는 못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가 IP를 확보해야 한다'라는 당위적 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오징어 게임'의 열풍 이후 IP 확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일부 정책적 노력이 있었고, 일부 IP를 확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왜 여전히 소위 'IP주권'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는 걸까? 문제는 “IP를 확보한 다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충분치 않다는 점에 있다.

◇IP 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권리 확보에서 수익화 경험으로

단순히 IP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2022년 큰 성공을 거두며 IP 확보의 모범 사례로 꼽혔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생각해보자. 드라마의 성공 이후 웹툰이 제작되었지만, 그 파급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IP를 확보하는 것과 그것을 성공적인 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전혀 다른 차원의 역량을 요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수의 콘텐츠 제작사들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불확실한 IP 사업에 거액을 투자하기보다는, 제작비를 전액 지원받고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현실적 판단이 여전히 우세하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K콘텐츠·미디어 전략펀드'와 같은 정책들을 통해 IP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만 이들은 여전히 '마중물'일 뿐이다. '확보'를 위한 정책적 노력들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의 과감한 '모험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IP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확신 없이는 민간 자본이 움직이기 어렵다. 개별 기업의 입장에선 중장기적인 IP 전략보다, 당장의 수익의 기회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권리를 확보해도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콘텐츠 사업의 관점에서는 모든 IP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기회 속에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고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결국 IP를 통해 수익의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보다 큰 기대가 있을 때, 즉 '활용' 전략이 보다 구체화되고 고도화 할 때 '확보'의 노력도 더 활발해질 수 있다.

따라서 정책의 우선순위는 IP로 돈을 벌어본 성공 경험을 산업 전반에 확산시키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 권리를 확보할 동기부여는 바로 그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사업자들이 기꺼이 IP 확보와 활용에 뛰어들게 할 수 있는 IP를 둘러싼 생태계 전반의 체질 개선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활용'의 관점으로 IP를 바라보면, 조금 더 유연한 접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에 귀속된 IP라 할지라도, 그 IP를 활용한 상품 제작에 국내 기업이 참여하며 함께 성장할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반대로 우리의 IP를 꼭 국내 기업만 활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웹소설과 웹툰의 성공을 글로벌로 확장하기 위해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전문성과 확장성에 주목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IP전략: 생태계와의 연결을 통해 성장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IP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예를들어, 디즈니는 매년 'D23 엑스포'라는 행사를 연다. 이는 단순한 팬 이벤트가 아니다. 이들이 발표하는 IP의 공개 라인업은 전 세계의 완구, 패션, 출판 등 라이선싱 파트너들을 향한 일종의 사업 설명회다. 디즈니는 자사의 IP를 중심으로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파트너들과 함께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공유하며 IP의 가치를 극대화한다.

넷플릭스 역시 오징어 게임 시즌 1과 비교할 때보다 진화된 IP 확장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1 당시 관련 상품이 출시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지만, 시즌 2·3은 공개와 더불어 다양한 연관 상품과 컬래버 캠페인이 체계적으로 전개했던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흥행 직후 국내 기업과 협력한 상품이 발빠르게 출시되었다. 이는 넷플릭스가 IP 사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국내외 파트너들과 협력하며 IP를 현지 시장에 맞게 확장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일본의 경우 '제작위원회'라는 독특한 IP사업화 전략을 발전시켜왔다. 출판, 방송, 완구, 게임 등 각 분야의 전문 기업들이 협력하며 리스크를 분산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때론 과도한 사업화 중심의 접근으로 콘텐츠의 획일화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글로벌 확장이 본격화되는 최근에는 이러한 전문성 중심의 협력이 만들어 내는 강력한 파급효과라는 강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의 사례는 IP 비즈니스의 핵심이 단일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다양한 산업과 연계하여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IP가 성장하는 것은 다양한 주체들의 전문성과 역량이 결합되는 과정이며, IP의 소유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참여자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IP를 소유했는가'를 넘어, '어떻게 IP 생태계를 구축해 우리 산업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할 것인가'라는 더 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스토리 IP'를 넘어 '라이선싱 IP'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생태계로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생태계'의 관점으로 볼 때, 여전히 좁은 콘텐츠 산업 내부의 '이야기 확장'으로 논의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확장이 콘텐츠IP의 중요한 한 축임은 분명하다. 웹소설이 웹툰으로, 웹툰이 드라마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더 많은 팬덤의 마음을 모으는 것은 IP의 성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다만, IP 산업의 실질적 부가가치가 콘텐츠를 넘어 상품, 서비스, 공간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는 '라이선싱 IP' 생태계에서 나온다는 점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라이선싱' 산업에 대한 국내의 시각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콘텐츠 분야의 라이선싱 마켓의 이름은 '캐릭터 라이선싱 페어'다. 기존에 국내에서 라이선싱 산업은 영유아 캐릭터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그렇다보니, '라이선싱' 산업의 범위를 여전히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글로벌 시장의 상황은 다르다. 글로벌 라이선싱 산업은 스포츠(EPL 유니폼), 엔터테인먼트, 브랜드(스타벅스 굿즈) 등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한다.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라이선싱 엑스포'는 이러한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행사에는 미디어 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패션, F&B 등 다양한 산업의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한다. 하지만 라이선싱 엑스포에 대한 한국 기업의 참여는 아직 전통적인 캐릭터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해외에서 많은 팬덤을 모으고 있는 K콘텐츠 기업들이 글로벌에서 펼쳐지는 기회의 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통계 역시 우리의 한계를 드러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콘텐츠 사업자의 약 87%는 IP 사업을 하고 있지 않으며, 83%는 향후 확장 의향도 없다고 답했다. 그 결과는 보다 확장된 생태계를 포괄해야 하는 콘텐츠 IP 산업의 전체 규모가 원천인 콘텐츠 산업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IP를 활용해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생태계 자체가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는 기업이 IP 확보를 위한 모험투자를 망설이게 하고, 결국 확장의 경험에서도 소외되는 악순환의 조건이 된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선, 콘텐츠 산업 내부에 한정된 시야를 더 넓은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콘텐츠의 기획 단계부터 더 큰 생태계와의 연결을 상상하며, 보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IP사업화의 전략을 고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콘텐츠IP 산업 '생태계'다. '생태계'를 이야기 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IP의 확장이 개별 기업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IP사업화를 위해선 다양한 좋은 파트너와의 협력을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선, 더 다양한 산업의 플레이어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보다 넓은 글로벌 시장으로 시야를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IP 비즈니스는 국내 IP와 국내 소비재 기업을 연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IP 산업의 성장은 국경을 넘는 협력에서 이뤄진다. 넷플릭스의 IP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활용해 농심이 글로벌 시장에서 컵라면 상품의 판매를 확장할 수 있듯,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우리 IP에 현지의 유력 소비재 기업 상품이 결합될 수 있어야 한다. 보다 유연하게 글로벌 IP 생태계와의 연결과 협력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K콘텐츠 IP 산업 생태계 고도화를 위하여

K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높은 관심은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권리 증서가 아니라, 실제 확장된 사업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자원이다. 상대적으로 자원이 제한된 국내 산업의 조건 속에서, 우리는 전략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어떤 방식의 사업의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자원을 투입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IP를 활용해 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는, 계약 테이블에서 권리를 위한 협상의 정교함 역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IP활용의 역량과 경험을 축적할 때, 결과적으로 '확보'를 위한 역량의 강화도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콘텐츠의 기획 단계부터 다양한 사업의 전략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획의 단계가 대부분의 콘텐츠 기업에게 커다란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기획 단계부터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협력하며 다각화된 사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획 단계를 위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IP 비즈니스 고도화를 위한 인프라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IP에 대한 가치평가를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 할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K콘텐츠 산업은 개별 작품이 세계적 수준의 품질로 인정받는 단계로 성장했다. 이제는 그 가치를 키워나가는 비즈니스 역량을 키워나갈 때다. IP 확보를 위한 노력은 지속하되, 이제 우리의 시야를 더 넓은 산업 생태계로 돌려야 한다. 글로벌 시장과 연결되고, 다양한 산업과 융합하며, IP 활용의 성공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나갈 때, 비로소 K콘텐츠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sky153@knou.ac.kr

〈필자〉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디어-콘텐츠 정책 분야와 미디어 역사 분야에서 다수의 연구를 수행해왔다. 문화정책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콘텐츠 산업 현장의 변화를 정책의 언어로 담아내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주요 연구로는 '한국 신문의 사회문화사'(공저, 2013), '언론사 문화사업의 역사와 사회적 의미'(공저, 2014), '콘텐츠 산업 트렌드 2025'(공저, 2020) 등이 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