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은 수급권 확인 대상자이오니, 아래 담당자에게 꼭 연락주시어 수급권 확인에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국민연금공단에서 온 우편물을 열어보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급권 확인 대상자? 왠지 기분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님이 어머님 맞으세요?” “네.” “같이 사는 거 맞으시죠?” “(당연하지) 네.” 담당자는 어머니와 직접 통화하는 걸 원했고, 어머니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또렷이 답하셨다.
국민연금에는 부양가족수당 제도가 있다. 수급자가 부양하는 배우자, 자녀, 부모에게 추가로 지급되는 부가급여다. 배우자는 월 2만4460원, 자녀나 부모는 월 1만6300원이다. 알고 보니, 고령인 어머니가 시스템에 의해 ‘수급권 확인(부정수급 의심) 대상’으로 분류된 것이다. 부정수급이라니. 일본에서 부모가 사망한 뒤에도 신고하지 않고 부모의 연금을 부정하게 받는 자식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지만, 연금이 부정하게 새어 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이니 이해하기로 했다.
나는 2년 전부터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 소득 공백이 생겨 2년 앞당겨 조기 수령을 신청했다. 제때 받는 금액과 비교하면 12%가 깎였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988년 처음 국민연금 납부를 시작할 땐, 그저 월급에서 떼어가는 세금쯤으로 여겼다. 그 국민연금을 내가 받는 날이 오다니. 액수는 충분하지 않지만, 든든하고 고마운 연금이다. 만약 지금 내게 국민연금이 없다면 노후는 물론 당장의 삶도 불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든든해야 할 국민연금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 논의를 보면 더욱 불안하다. 보험료율을 몇 퍼센트 올릴지, 소득대체율을 몇 퍼센트로 맞출지, 온통 숫자만 오가고 있다. 세대 간 이해타산과 정치권의 표 계산이 얽혀, ‘왜’ 국민연금을 지켜야 하는지,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지는 실종됐다. 어렵게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조정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논란은 오히려 격화되고 있다.
이런 소모적인 논쟁은 국민 모두를 불안으로 몰아넣는다. 국민연금은 단순한 저축이 아니다. 노후 빈곤에 내몰리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드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세대 간 신뢰와 연대의 약속이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100세 시대가 현실이 된 지금, 이 약속의 내용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보험료 인상이나 수급 연령 조정 같은 ‘부담’ 이야기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노후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먼저 논의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노후 빈곤을 막는 ‘공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국가의 적극적인 재정 참여도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 연대를 새롭게 설계하자’는 용기 있는 상상이다. 국민연금은 우리 모두의 노후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지금은 대책 없이 흔들 때가 아니라 제대로 된 개혁을 시작해야 할 때다.
어머니~ 이제 부정수급 의심은 해소됐으니 당당하게 받겠습니다. 딸아, 우리 함께 국민연금을 지키자. 너의 미래도, 나의 노후도 우리가 서로 연대할 때 더 단단해질 수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