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와 상호주의, 다자주의

2025-04-15

미국 건국의 아버지 알렉산더 해밀턴의 추종자였던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캐리는 당시 영국이 자유무역을 앞세워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면서 관세 인상을 부르짖었다. 캐리의 주장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연방 정책으로 채택됐다. 남북전쟁은 노예 해방이라는 허울로 장식됐지만 실상은 면화 수출에 의존하던 남부 농장주들의 반발에 따른 관세 내전이었다. 20세기 초에도 미국의 통상정책은 고립주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대공황을 심화시킨 1930년 스무트 홀리 고관세도 그 자장 안에 있었다.

변화의 계기는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1934년 호혜관세법에 따른 저관세 국제주의로의 전환을 거치며 마련됐다. 뉴딜의 철학은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자유무역을 지향했다. 양국 간 품목별 교섭이 추진됐으되 양허는 국내 생산자와의 경합이 제한적인 품목을 대상으로 했다. 각국 경제 발전 차이와 국내 정책의 요구가 고려됐기에 국가들은 서로 동일한 시장 접근 조건을 제공할 의무가 없었다.

뉴딜의 상호주의는 관세 교섭의 초점을 양국 간 이익 변화의 균형에 맞추었다. 훗날 1947년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의 제1조에 규정될 최혜국 대우 원칙도 존중됐다. 그래서 나라에 따라 관세를 차별적으로 부과하는 조치는 위법한 것으로 간주됐다.

최근 트럼프의 관세정책도 상호주의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양국 간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절대 수준을 일치시키려 들고 나라에 따라 관세에 차별을 두는 점에서는 차라리 용어의 왜곡에 가깝다.

기실 트럼프 관세정책의 경제적 기초가 취약함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스티븐 미런의 ‘트리핀 딜레마’ 해석만 봐도 드러난다. 트리핀 딜레마는 미국이 무역 흑자를 보면 기축통화인 달러의 해외 공급 부족으로 세계 경제가 원활히 운영되기 어렵고 반대로 무역 적자를 보면 달러 가치가 하락해 기축통화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모순에 처한다는 가설이다. 미런은 이 가설을 근거로 외국 중앙은행들이 자국 수출을 늘릴 목적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 달러 강세를 조장했고 이로 인해 미국은 산업 경쟁력을 잃고 무역 적자라는 희생을 감수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정작 인과관계도, 사실관계도 틀렸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의 지적처럼 미국의 산업 경쟁력 저하로 무역 적자가 지속된 것이 원인이고 그렇게 달러를 벌어들인 해외 금융회사들이 미국 국채를 매입한 것이 결과였다. 경제사학자 마이클 보르도 등은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10년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 대비 평균 2.8%였던 반면 외국 중앙은행 등의 달러 매입 규모는 겨우 0.16%에 불과해 둘 사이에 연관을 찾기 어렵다고 보고했다.

트럼프 정책이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주의로부터 이탈한 것이 안타까운 일인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에서는 그간에 예외 없이 미국의 이익이 최우선이었다. 겉으로 중립적인 듯 보였던 다자주의 게임의 규칙도 미국에 이익이 안 되면 지켜지지 않았다. GATT와 그 후신인 WTO가 표방한 다자주의는 식민의 역사에 깊이 뿌리 둔 국가 간 격차를 은폐했다. 개발도상국들의 77그룹은 환영받지 못했고 그들이 제안한 ‘신국제경제질서(NIEO)’는 사산됐다. 그러니 다자주의 자체가 절대선은 아닌 셈이다. 그보다 바람직한 대안은 노동권과 민주주의 같은 보편 규범에 충실하되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억제되고 각국의 자주성이 보장되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다자주의일 법하다.

다만 트럼프 정책의 근본적인 배경에 국제 질서를 자신들 입맛대로 바꾸고 뉴딜의 사회정책을 해체하며 에너지 반혁명을 실행하려는 새로운 권력 연합인 ‘레드 테크’ 블록의 기획이 자리하고 있다는 미국 신경제연구소 토머스 퍼거슨의 경고는 참고하자. 그는 이번 관세 조치가 인공지능 기술과 에너지 및 핵심 광물의 미래를 통제하면서 중국 정권을 교체시키려는 미국 군산복합체와 실리콘밸리의 세계전략에 있어 첫 단계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다시 글의 서두로 돌아가 캐리의 주장을 되짚어본다. 카를 마르크스는 1857년의 어느 미완성 원고에서 자본주의 생산 관계의 모순은 세계 시장이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인 ‘생산하는 국가들 사이의 관계’로 현상한다고 썼다. 캐리가 세계 경제를 자유무역이나 세계화, 패권 국가에 의해 통일된 하나의 시장처럼 간주하는 대신 부조화의 존재로 인식한 점에서 옳았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렇다고 관세가 일반적으로 적절한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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