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장기를 축소한 형태로 구현한 오가노이드(Organoid)가 동물실험을 대체할 분야로 급성장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 의약품 규제 당국이 신약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동물실험의 비윤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오가노이드 실험을 유도하면서다. 이에 따라 신약개발 활용도가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오가노이드 시장에 속속 진출하며 시장파이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앞으로 불거질 수 있는 국제 표준 시험법 정립과 특허 분쟁 리스크 해소가 핵심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26일 시장조사기관 더 글로벌리서치컴퍼니에 따르면 오가노이드 시장은 올해 48억 3000만 달러에서 연평균 21.3% 성장해 2029년 108억 2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가노이드는 사람 세포를 분화 시킨 3차원의 인공 장기(미니장기)로 2009년 학계에 처음 보고됐다. 실제 인체 조직을 모사한 만큼 이식 시 기존 치료제 대비 부작용이 적고 전임상에서 약물 반응을 반복적·장기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장기 이식 가능성에 의료계의 관심이 커졌지만 혈관화, 면역 적합성 등 기술 문제로 아직까지는 실험실 수준에 머물러 있어 산업적 성장은 더딘 상황이었다.
최근 오가노이드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올 4월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컴퓨터 모델, 오가노이드 등 비동물 시험기법(NAMs)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의약품청(EMA)도 2021년부터 이와 유사한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 중이다. 글로벌 의약품 규제당국이 오가노이드를 도입하기 시작한 이유는 기존 동물실험이 동물과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로 임상 성공률이 낮기 때문이다. 인체를 모방한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면 신약 개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동물실험에 대한 윤리적 비판 문제도 한 몫했다.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관계자는 “동물실험을 거친 신약의 임상시험 성공률은 5~15%로 개발 비용은 평균 30억 달러 들고, 개발 기간은 약 15년이 걸린다”며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면 개발 기간은 50%, 비용은 70%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시장 성장성이 큰 만큼 전세계 바이오 관련 기업들이 오가노이드 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를 비롯해 오가노이드사이언스(476040), 셀인셀즈, 동아에스티(170900), 넥스트앤바이오 등이 이 분야에 진출했다.
전문가들은 오가노이드 산업이 이제 막 개화 단계에 접어든 만큼 향후 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국제 공인 시험법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내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27개 기업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18개 기관 참여해 산업 표준 수립과 시험법 확립을 목표한 ‘K-오가노이드 컨소시엄’이 이달 출범했다. 컨소시엄 한 관계자는 “오가노이드는 미세 환경 설정 방식이나 배양 조건에 따라 구조와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며 “의약품 개발에 활용하려면 언제나 일관된 결과를 낼 수 있는 표준화된 시험법이 필요한데 아직 국제적으로 정해진 방법이 없어 이를 선점하면 국내 기업들이 해당 기술을 보다 수월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는 간 오가노이드 기반 독성 평가법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공인 시험법으로 등재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특허 분쟁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독일 머크는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휘브레흐트(HUB)를 인수했다. 2009년 오가노이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한스 클레버스 교수가 설립한 회사다. 성체 줄기세포로부터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기술의 원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HUB는 오가노이드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게 기술 사용에 대한 경고성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바이오 특허 전문 변호사는 “HUB사 특허가 워낙 광범위해 사전에 사용 협의를 하거나 회피 기술을 확보해야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다”며 “만약 국제 표준 시험법에 HUB사 방식이 포함될 경우 특허 회피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