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신체적 특성 중 하나는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손의 존재이다. 우리는 손으로 수없이 많은 것을 만들고 가꾸고 다듬어왔다. 발로는 그런 걸 할 수 없다. 엄청나게 서툰 결과물을 접할 때 “발로 만들었냐”며 비꼬는 건 그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의 손은 해부학적 구성이 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는 물론이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구성하는 뼈의 수도 14개로 동일하다.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각각 5개의 뼈가 있으며, 이들은 다시 여러 개의 뼈들이 어우러져 커다란 관절을 구성하는 손목뼈와 발목뼈들과 맞물린다. 손목뼈가 8개인 데 비해 발목뼈는 7개로 하나가 적을 뿐 손과 발의 전체적인 뼈의 수와 구성, 그 배열 패턴은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인간의 손과 발의 주된 기능과 할 수 있는 일은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을 만들어내는 차이는 엄지의 위치에서 비롯된다. 발은 엄지가 다른 발가락과 나란한 방향으로 같은 각도로 붙어 있지만, 손의 경우 엄지손가락은 다른 손가락들과 거의 직각에 가까운 각도로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손에 붙은 각도 역시 비틀어져 있다. 이렇게 엄지가 분리되고 비틀어진 손의 구조는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의 끝을 마주 댈 수 있게 한다. 마주하는 엄지의 존재는 손이 물체를 세게 잡거나 움켜쥘 수 있게 만든다. 신체적으로 별다른 방어수단을 가지지 못했던 인류의 조상에게 있어, 높은 나무에 오를 수 있고, 나뭇가지를 쥐고 휘두르거나 돌을 잡고 던질 수 있는 능력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거나 먹잇감을 구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재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마주하는 엄지를 가진 존재가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침팬지 역시 비슷한 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우리의 생활 양식은 이미 오래전 갈라져 다르게 이어져 왔다. 비슷한 손을 가졌음에도 이토록 차이가 난다면, 진짜 차이는 다른 곳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주목한 곳이 바로 발이다.
사람과 침팬지의 차이는 손보다 발에서 두드러진다. 침팬지는 마주하는 엄지를 지닌 발을 가지고 있다. 나무 위에서 주로 살아가는 침팬지들에게는 손뿐 아니라 발도 나뭇가지를 움켜쥘 수 있어야 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 다른 숲속 영장류인 오랑우탄이나 고릴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인간만의 고유성은 마주하는 엄지손가락을 지닌 손이 아니라, 평행한 엄지발가락을 지닌 발에 빚진 바가 크다. 마주한 엄지를 지닌 손이 마음껏 날개를 펴고 잠재력을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원래 타고난 위치를 벗어나면서까지 발가락의 정렬을 다시 맞춰 손을 오랜 의무로부터 벗어나게 한 발의 역할이 컸던 셈이다.
사람을 제외하고, 사지가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에게 앞발의 주된 역할은 이동수단으로써의 기능이다. 사지동물은 당연하고, 얼핏 이족보행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조류나 박쥐 역시 앞발을 날개로 변화시켰을 뿐,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건 마찬가지다. 영장류들조차도 숲속에서는 손을 이용해 나무를 타고, 초원에서는 주먹 쥔 손을 땅에 짚는 너클 보행(knuckle walking)을 통해 이동하며 움직이는 데 손을 꼭 보탠다.
반면 인간은 손과 발의 기능 구분이 명확하다. 이동은 발이 전적으로 담당하며, 손은 이동에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를 위해 나무 위에 살 때는 분리됐던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들과 평행하여 단단히 땅을 누를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으며, 사지로 분산됐던 하중을 두 다리로만 받치기 위해 발바닥 구조 역시 아치형을 이루며 둥글게 휘어지도록 변화했다. 하지만 인간의 발은 애초에 분리된 엄지에서 시작됐는지라, 그 오랜 직립보행에도 불구하고 발에 가해지는 하중이 누적되면 엄지의 각도가 벌어지며 발이 변형되기 쉽다. 그게 바로 무지외반증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두 손으로 문명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인간의 손이 그 가능성을 모두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손을 이동의 의무에서 해방시켜 오롯이 몸을 버텨준 발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들 뒤에는 늘 그들이 최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스태프와 후원자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대 위 주인공만큼 무대 뒤 인물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