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올해 고교학점제가 전면 실시되고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해 학생 개개인 맞춤형 교육을 실현한다”고 발표하였다. 국회가 AI 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박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그분은 AI 디지털 교과서를 교육 현장에 도입해야 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도입을 반대하는 교사들이 많은 상황인 데다, 교과서 개발에 이미 수십억원씩을 쓴 출판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부 장관이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충분한 연구와 준비 없이 속전속결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학 교사 중 90% 가까이가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교육은 도식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냐
이 교과서는 일견 장점이 많아 보이지만 아이들이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와 지나치게 친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부모와 선생님들이 많은 데다가 교육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교육 효과에 대한 의문, 책 읽기 습관과의 괴리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학교에서의 집단 학습의 실상과 의의를 잘 이해해야 이런 문제점들이 보이는 법이다.
이번 사태는 12년 전에 교육부가 도입했던 스토리텔링 수학 교과서와 닮은꼴이다. 스토리텔링 교과서는 학생들이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고안되었지만 충분한 준비 과정 없이 교육 현장에 도입되었다. 학생들의 문해력과 수학적 개념의 이해를 연계한다는 취지가 일견 좋아 보였는지 모르나 교과서의 스토리 구성과 수학적 내용의 연계성 등에 대한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했다.
나중에 스토리들도 다듬어지고 교육 현장의 지도법도 발전하였으나 교육의 실효성이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도입의 취지와는 달리 수학이 더 어려워져 버렸다. 국어도 아니고 수학도 아닌 것이 난도만 높아진 꼴이 되니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누적되었고 점점 축소의 길을 밟다가 결국 언젠가부터 스토리텔링 수학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교육은 좋은 취지와 효율적일 것 같은 내용만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교육은 도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아 보이는 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육 정책의 수립에도 실무와 연구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실적을 추구했던 2013년 당시의 교육부 장관과 현재의 장관이 동일한 사람이다. 교육의 최고 책임자가 교육과 관련된 경력이 전혀 없는 분이라는 점도 문제지만 역대 대통령 대다수가 장관 자리에 전문가를 앉히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교육에도 전문성이 중요하다
현 장관은 과거에도 유난히 일을 많이 벌였다. 그는 지난 임기 때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했고 자사고 설립을 추진했다.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삭제한다는 논란, 진보 정치인이 된 시인의 시를 삭제한다는 논란 등도 그의 임기 중에 일어났다. 그분은 사교육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수학과학올림피아드를 억제하는 정책도 펼쳤다. 이 정책은 10년이 넘게 유지돼왔고 그 결과 수학과학올림피아드는 크게 위축되어 이제는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올림피아드 참가자는 과학고 학생들 중에도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 전체의 사교육 경감에는 별 효과도 없는데도 최상위 수학과학 영재들은 이 정책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대통령의 느닷없는 지시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입시제도를 4년 전에 발표해야 한다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시행을 밀어붙인 사람은 장관이다. 의대 증원은 ‘좀 더 값싸고 친절한 의료서비스’와 ‘필수의료분야 인력 확충과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를 기대하는 국민 정서에 기반한 것이나, 결국은 의료대란과 더불어 막대한 예산 낭비를 초래하였다. 의사 증원은 값싼 의료서비스라는 기대와는 달리 과거에 존재하던 과잉 진료와 검사를 다시 불러올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공계 고급 인력 유출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대통령이 수능 문제의 난이도까지 간여하는 일도 벌어졌고 장관은 그의 뜻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 교육에도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어야 한다. 기대를 모았던 국가교육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도 위원들의 전문성과 의지가 부족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