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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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국 워싱턴 외곽에 있는 펜타곤(미 국방부 청사)을 겨냥해 1메가톤급 열핵폭탄(수소폭탄)을 발사했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의 방어망이 요격에 실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열핵폭탄은 섭씨 1억도가 넘는 열을 내며 폭발한다. 1억도는 태양 중심부보다 4~5배 더 높은 온도다. 60만제곱미터 규모의 펜타곤 건물이 최초의 섬광과 열로 인해 먼지가 된다. 직원 2만7000명은 즉사한다. 펜타콘 인근의 건물은 해체되고 사람들은 까맣게 불타버린다. 동쪽으로 4킬로미터 떨어진 야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던 관중 3만5000명의 몸에도 불이 붙는다. 이 관중들은 살아남더라도 극심한 3도 화상에 시달릴 운명이다. 3도 화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지절단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핵미사일이 폭발한 지 불과 3초 만에 벌어질 일들이다. 2분이 지나기 전에 100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핵미사일이 떨어진 그라운드 제로에서 16~19킬로미터 떨어진 구역에서는 불 붙은 새들이 비처럼 떨어져내린다.
이는 단일통합작전계획(SIOP)이라 불리는 미국의 핵 총력전 계획을 토대로 미 안보전문 탐사보도 기자 애니 제이콥슨이 정리한 가상 시나리오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핵전쟁에 대비한 대응계획을 세워왔다. <24분>은 제이콥슨이 SIOP 작성에 관여해온 사람들과의 독점 인터뷰를 바탕으로 미국 영토로 핵미사일이 발사된 직후 72분간 벌어질 상황을 분단위로 쪼개서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핵공격 및 방어 능력의 세부와 의사결정 과정, 핵무기가 가져올 재앙적 결말을 소름끼치는 생생함으로 보여준다.
북한의 핵공격 시나리오는 3월30일 워싱턴 시간으로 오후 3시3분에 시작된다. 북한 ICBM ‘화성-17’이 평양에서 32킬로미터 떨어진 이동식 발사차량에서 발사된다. 3만6000킬로미터 상공에 있는 미 국방부의 감시위성 시버스(SBIRS)가 배기가스의 불꽃을 포착해 콜로라도주 항공우주 데이터 시설로 ‘탄도미사일 발사, 경고!’를 전송한다. 발사 후 3분15초가 지나면 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북한이 미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보고한다. 4분30초 후에는 핵미사일의 탄두와 추진체가 분리된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수십억달러짜리 SBIRS로도 핵탄두의 궤도를 추적할 수 없다. 북한은 첫 미사일 발사 16분 후 캘리포니아 연안으로부터 560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서 열핵탄두를 장착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한다. SLBM은 첫 미사일 발사 24분 후 캘리포니아주 디아블로 캐니언의 원전을 타격한다. 펜타곤으로 날아간 첫번째 미사일은 발사 후 33분에 펜타곤을 먼지로 만들어버린다. 펜타곤 직원은 물론 인근 100~200만명의 목숨도 함께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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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온전할 수 없다. 잠수함에서 발사된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체(MIRV) 트라이던트 미사일 32기가 북한이 첫번째 미사일을 발사한 지 52분 후 평양에 떨어진다. “지름 5킬로미터의 고리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뭉개지고, 모든 사람이 타버리고, 모든 것에 불이 붙는” 지옥 같은 상황이 불과 몇 분 동안 81차례 이어진다. 평양 인구 300만명은 말 그대로 ‘소각’된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절멸하는 ‘핵 홀로코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가 미국이 북한을 향해 쏜 핵미사일을 자국을 겨냥한 것으로 오인하면서 1000기 이상의 핵미사일이 미국과 유럽에 떨어진다. 남한에서는 북한 소형 로켓들에 탑재된 240톤의 사린 가스 공격으로 65만명에서 250만명이 사망한다.
책을 읽다보면 수십억명의 생명을 앗아갈 재앙적 핵전쟁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들이 대단히 허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핵전쟁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전개된다. 미국 대통령이 적의 핵공격에 대응해 어떤 핵무기를 사용해 어떤 표적을 공격할지 결정하기 위해 허용된 시간은 불과 6분이다. 미국은 1700기가 넘는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만 적의 핵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미사일은 도합 44기에 불과하다. 요격 성공률은 절반 이하다.
오독 위험도 높다. 1979년 미국 분석가들은 시뮬레이션 테이프가 실수로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의 컴퓨터에 삽입돼 러시아가 미국에 핵공격을 퍼붓고 있다고 오인했다. 냉전 시기인 1983년 소련 위성은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미국이 발사한 핵미사일로 오인했다.
미국의 ‘경보 즉시 발사’ 정책은 확전으로 가는 급발진 장치와 다를 바 없다. ‘경보 즉시 발사’란 “공격이 임박했음을 통지받을 경우 미국은 물리적으로 핵 타격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상대국이 어디든 핵무기를 발사한다는 뜻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0년 선거 당시 “이토록 많은 무기를 고도 경계 태세로 유지하는 것은 실수로 인한 발사나 비준되지 않은 발사 같은” 위험을 부를 수 있다며 폐기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도 폐기 약속을 실행하지 않았다.
‘핵억지’를 강조하는 이들은 제정신을 가진 지도자라면 미국을 향해 핵버튼을 누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미국의 열핵무기 설계자 리처드 가윈은 “핵무기를 가진 허무주의적 광인 한 명만 있으면 승자 없는 핵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같은 인물의 우발적 행동을 우려하지만, 저자는 오랜 기간 국제 질서의 수호자를 자임해온 미국의 호전성도 간과할 수 없다고 본다. 미국은 1960년대에 “미국 정부가 주도하여 6억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예방적 선제 핵 공격”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결론은 하나다. “핵전쟁은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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