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자동화하는 시대' 입법의 룰을 다시 쓰는 AI

2025-04-21

UAE, 최근 AI를 입법 절차 전반에 적용하겠다는 계획 발표해

정치적 판단과 인간적 해석이 핵심인 법률 제정에 인공지능(AI)이 참여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최근 AI를 입법 절차 전반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전 세계 법제도 시스템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단순히 행정 편의 차원을 넘어, AI가 실질적인 입법 과정의 일부로 기능하는 것은 아직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디지털 전환이 법의 영역까지 침투한 가운데, UAE는 AI를 ‘공동입법자’로 만들겠다는 전례 없는 실험을 개시했다.

UAE는 AI를 활용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기존 법률을 검토·개정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공식화했다. 이를 위해 UAE 정부는 ‘규제 정보청(Regulatory Information Authority)’이라는 전담 기관을 신설했으며, AI가 정부 자료와 법적 데이터를 분석해 직접 법률 변화안을 제안하는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셰이크 무함마드 부통령은 “AI가 법 제정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라며 “법률 갱신을 주기적으로 제안하는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UAE는 이 시스템을 통해 입법 소요 시간을 최대 70%까지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AI는 입법 초안 정리나 법안 요약, 공공 서비스 개선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반면, UAE는 AI가 입법 과정의 ‘참여자’가 되는 구조를 구상 중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시도로 평가된다.

UAE의 AI 입법 실험은 단순히 기술 도입이 아니라, 규제 기술(Regulatory Technology)의 진화와 맞물려 있다. 데이터 기반 행정, 자동화된 정책 시뮬레이션, 정책 영향도 분석 등은 이미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흐름이다. 여기에 중동 국가 특유의 중앙집중형 국가 운영 시스템이 결합되면서 보다 신속하고 공격적인 AI 실험이 가능해졌다.

UAE는 이미 AI 투자기업인 MGX를 설립하고, 이사회에 AI 참관인을 배치하는 등 정부 차원의 AI 활용 범위를 확대해왔다. 이는 단순히 행정 효율화를 넘어, 국가 의사결정 체계에 AI를 통합하는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책 설계와 입법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함으로써 불확실성 높은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정책 대응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입법 분야에서 AI가 사용된 사례는 제한적이다. 미국 일부 주나 유럽연합은 법안 요약 및 정책 제안서 분석에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해 왔지만, AI가 직접 법률을 제안하거나 법률 체계를 변경하는 역할을 한 전례는 없다. 따라서 UAE의 시도는 기술적으로는 생성형 AI의 확장,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 모델과의 충돌 가능성까지 함께 논의돼야 하는 복합적 사안이다.

코펜하겐경영대 로니 멕달리아 교수는 “AI를 공동입법자로 설정하려는 UAE의 시도는 매우 대담하다”고 평가하며 “이 모델이 다른 권위주의 국가나 소규모 정부 조직에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빈센트 스트라우브 교수는 “AI는 여전히 신뢰성과 일관성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AI가 인간처럼 법률을 해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비판적 입장을 내놨다.

UAE의 AI 입법 실험은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구조적인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AI가 법률 제정에 참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알고리즘 편향, 법 해석의 불투명성, AI 권한의 법적 책임 문제는 여전히 명확히 해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전통적인 입법 시스템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기도 하다.

특히 AI가 제안하는 입법 초안이 향후 법률시장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가 로펌이나 전문 법률자문기관에 지급하는 비용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고속 입법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예산 운용과 행정 전략 모두에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

향후 이 시스템이 실증적으로 검증되고 제도적으로 정착할 경우, AI는 ‘입법 보조자’가 아닌 ‘입법 설계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사회적 합의와 제도 설계가 더뎌질 경우 발생할 충돌의 가능성이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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