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하의 다정한 편지] 여러 개의 문

2025-11-19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인데도 나는 아직도 때때로 시험을 보는 꿈을 꾼다. 시간에 쫓겨 문제지를 다 풀지 못하거나, 백지의 답안지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꿈이다. 깨고 나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을 보며, 그 꿈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학교를 떠났지만, 여전히 각자의 삶에서 자기만의 문제지를 풀고 있는 수험생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어른이 되면 시험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시험은 늘 삶의 다른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점수나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어떤 지점을 넘어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들 앞에서 흔들린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선택을 복잡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에 빠지게 되는 순간도 있다. 기대보다 실망을 안겨주었던 자리가 오히려 자신에게 필요한 기회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큰 기대를 품었던 일이 나와 맞지 않는 자리임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가까스로 잡은 기회를 놓쳤을 때,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허사로 돌아갔을 때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지만, 실은 어느 것도 끝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문을 지나왔다. 한 개의 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한 개의 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두 개 혹은 세 개, 그보다 더 많은 문이 앞에 있었다. 그것은 통과해야 하는 문이기도 했지만, 선택해야 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활짝 열려 있는 문이 있었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아 절망하던 순간이 있었다. 때때로 길을 잘못 든 적이 있었지만, 그 길을 지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무엇이 되느냐가 삶의 목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살아가든 그것은 결국 삶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방식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나 자신으로 남는 일. 그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여러 번 멈추고, 여러 번 길을 잃고, 다시 방향을 바꿀 것이다. 어떤 선택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뒤늦게 의미를 드러낼 것이다. 때로는 놓쳐 버린 것을 아쉬워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 덕분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인생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문을 두드리고 열어보며 조금씩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러니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도 괜찮다. 그 망설임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열여덟이거나 열아홉인 그대들, 혹여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 앞에 놓여 있는 문은 여러 개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어른들 또한 그렇게 수십 번 멈추고,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절망은 가장 늦게 습득하는 언어이기를, 어떤 문이라도 거침없이 밀고 잡아당기기를, 그리고 열린 곳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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