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신용도 ‘AA·부정적’…모니터링 결과 따라 조정
조기상환 청구 발생 시 대응 여력 갖춘 것으로 평가
사채권자와 원만한 합의시 주가 하방 압력 제한적
롯데케미칼의 기한이익상실(EOD) 원인 사유 발생으로 유동성 리스크가 제기되자 신용평가사들이 대응 여력 점검에 들어갔다. 향후 진행 경과에 따라 신용등급 저하 우려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룹주에도 파급력이 예상된다.
26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나이스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평사들은 최근 롯데케미칼의 EOD 원인 사유 발생에 대한 모니터링에 돌입했다. 이들은 향후 모니터링 결과를 신용도에 반영할 계획이다.
3대 신평사들은 모두 올해 6월 확정된 롯데케미칼의 기업신용등급 ‘AA·부정적’은 유지했다. 단 사채권자집회 진행 경과와 유동성 대응 부담 상승 여부 등을 점검해 하향 조정 가능성을 열어뒀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지난 21일 EOD 사유 발생을 예탁결제원에 공고했다. EOD는 금융기관이 채무자의 신용위험이 높아질 경우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채무자가 대출금의 원금 또는 이자를 연체할 경우 등으로 발생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9월30일 기준 사채관리 계약상 유지해야 하는 재무비율 중 3개년 누적 이자보상 비율을 5배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항목을 충족하지 못했다. 해당 사채는 14개 회차, 발행잔액은 2조450억원이다. 이는 전체 회사채 잔액의 89%에 해당한다.
EOD 원인 사유 발생은 즉각적인 EOD 선언이나 채권 조기상환 의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향후 사채권자 집회 결의에 따라 해당 사채에 대한 EOD 선언이 가능하다. 사채권자 집회는 회사와 사채관리회사, 사채권자가 소집 가능하다.
현재 롯데케미칼은 주요 사채권자인 연기금, 증권사 등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별도의 사채권자 집회를 소집해 소명한다는 계획이다.
신평업계는 롯데케미칼이 이번 건과 관련해 자금대응 여력은 갖춘 것으로 평가했다. 실제 EOD 선언을 할 경우 회사의 전체 사채 잔액 2조3000억원을 즉시 조기상환 해야 하는데 보유 유동성 규모 등을 감안할 때 대규모 조기상환 청구가 발생하더라도 자체 자금으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나신평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지난 10월 말 별도 기준 현금성자산 약 2조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각 가능한 장기투자자산 4000억원과 금융기관 신용한도 약 1조9600억원 등을 추가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신평업계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유동성 리스크를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신용도 저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조기상환 청구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금 소요 자체가 신용도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윤재 한신평 수석연구원은 “이번 회사채 EOD 원인 사유 발생으로 인해 차입구조 단기화 등 유동성 대응부담이 높아질 경우 신용도 하향압력이 현 수준 대비 크게 상승할 것”이라며 “롯데케미칼과 사채권자 간 협의를 포함한 사채권자집회 제반 일정과 진행 경과를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신용도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의 유동성 리스크 제기에 그룹주의 주가 하방 압력은 높아지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이달(11월 1~26일) 들어 30.08%(9만5400→6만6700원) 하락했고 같은 기간 그룹 내 시총 비중이 큰 롯데지주(-14.83%·2만3950→2만400원), 롯데쇼핑(-15.60%·6만6000→5만5700원),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31.89%·3만8100→2만5950원) 등도 하락했다.
증권가는 롯데케미칼의 EOD 원인 사유 발생이 유동성 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이 낮고 최근 발생한 롯데그룹 차입금 관련 유동성 위기설도 풍문으로 밝혀진 만큼 회사와 사채권자 간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경우 그룹주의 주가 하방 압력은 제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투심 회복을 위한 모멘텀 확보가 여의치 않은 만큼 단기적으로 실적 회복과 중장기적으로 석유화학 설비 축소 중심의 자산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에 대해 “최근 투자심리를 감안해 목표주가를 11만원에서 9만원으로 하향하나 낙폭과대 및 유동성 리스크 확대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투자의견은 ‘매수’를 유지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