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대한 최종 불허 결정을 할 때 참모 다수가 반대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를 묵살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차기 행정부에게 결정권을 넘기자는 제안이었는데, 바이든이 노조를 의식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전언이다.
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2일 열린 백악관 회의에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등 일부 참모는 일본제철에 미국 국가안보에 가할 위험을 최소화할 방법을 제시할 시간을 주자고 제안했다. 사실상 인수 허가 결정을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넘기는 방안이다.
또 존 파이너 국가안보 부보좌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 람 이매뉴얼 주일대사, 재닛 옐런 재무장관, 재러드 번스타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등은 인수 불허 입장에 반대하거나 의구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신문에 따르면 이들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자, 세계 1위의 대미 투자국이란 점을 들며 인수 불허가 미·일 동맹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회의 참석자 중 일부는 “일본제철의 인수가 쇠락한 US스틸을 안정시키는 최선의 거래”란 의견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같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3일 인수 금지를 공식 발표했다. 이와 관련, “인수 불허가 미국 일자리를 보호하고, 인수를 반대한 노동조합에 확실한 승리를 선사해 바이든의 치적을 부각할 기회였다는 논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스티븐 리셰티 선임고문, 브루스 리드 부비서실장, 마이크 도닐런 선임고문 등 바이든을 오래 보좌한 참모 3인방과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 등이 이런 주장에 동조했다고 한다. WP는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은 원래부터 친노조 성향이었다”며 “(바이든은) 자신의 (신념을) 따랐다”고 전했다.
일본선 “일본제철 배신당했다”
일본 측은 이번 인수 불허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6일 이마이 다다시(今井正) 일본제철 사장은 “미 정부의 판단은 매우 적절한 것이 아니다”며 “(미 정부 상대 소송을) 중요한 선택지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US스틸 인수가 미 대선으로 인해 정치화돼 보호주의 물결에 휩싸였다”며 “대선이 끝나면 상황이 진정될 거라 본 일본제철의 기대가 배신 당했다”고 보도했다. 무토 요지(武藤容治) 경제산업상도 “(인수 불허는) 이해하기 어렵고 유감”이란 입장을 내놨다.
중국 “미국은 동맹도 사냥 대상”
한편 5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사건을 두고 “미 정부의 결정은 국가안보 개념을 일반화해 보호주의를 행한 또 하나의 사례”라며 “동맹국도 미국의 포위·사냥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 사이에선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미 동맹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란 풀이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