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투표 불참 의원 105명 사진 1면 게재…‘종이신문 향한 낯선 열광’

2024-12-13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12월 9일

월요일자 1면엔 ‘105장’의 사진을 썼다고 해야겠네요. 경향신문은 지난 7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되자 ‘투표 불성립’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 돌아오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105명의 인물사진을 실었습니다. 국회 밖 100만 시민들의 “윤석열 탄핵” 외침을 외면한 이들의 투표 불참으로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현직 대통령 윤석열의 대통령직 박탈은 무산됐습니다.

105명의 인물사진과 이름, 지역구가 명시된 9일자 지면은 전날 밤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유되며 화제가 됐습니다. 촛불(응원봉) 시민들의 응원도 컸고, 이날 신문을 구하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종이신문’에 열광하는 아주 ‘낯선 보람’을 경험했습니다. 종이신문의 맛이자 멋이며, 존재 이유입니다.

■12월 10일

감정이 표현된 사진은 시선을 끌기 마련입니다. 그중에서 눈물사진만큼 극적인 사진이 있을까요. 사진기자도 편집자도 눈물에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을 막기 위해 투입된 계엄군을 지휘한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이 본인의 신원을 공개하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김 단장은 당시 상황을 증언하면서 “(자신의)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이며 “죄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1면 사진으로 울먹이는 김 단장의 사진을 썼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것과 눈물은 다르고, 울먹이는 것과 우는 것은 또 다른 표현입니다. 마감된 사진들 중에 붉어진 눈시울에 고인 눈물이 더 보이느냐, 울먹이는 표정이 더 보이냐를 고려해 사진이 골라졌습니다.

■12월 11일

비상계엄 당시 특수전사령관이었던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윤 대통령이 “국회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곽 전 사령관은 계엄 선포 이틀 전인 1일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계엄 관련 지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지휘한 계엄 상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전군 지휘관 회의’도 아니고 계엄에 관여한 군 지휘관들이 대거 국회에 출석해 있는 상황과 그들의 증언이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1면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증인석을 가득 메운 군 고위 인사들의 모습을 남겼습니다. 기록으로 기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12월 12일

문장을 ‘윤석열 대통령’으로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는 시절입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3시간 전에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대통령 안전가옥으로 불러 계엄 관련 지시사항을 하달했습니다. 조 청장은 대통령이 계엄 선포 이후에도 6차례 전화를 걸어 국회의원을 체포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직접 했다고 조사에서 밝혔습니다. 계엄 사태의 수사가 주범으로 지목된 윤 대통령 바로 앞까지 왔습니다. 조 청장을 긴급체포한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시도했습니다. 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첫 강제수사 시도였습니다만, 경호처 관계자들이 막아서며 긴 시간 대치 끝에 불발됐습니다. 대통령실을 나서는 경찰 수사관들 사진을 1면에 넣었습니다. 저 파란색 상자에는 수사에 도움이 될 리 없는 자료가 들었을 테지요.

■12월 13일

윤 대통령이 ‘칩거’ 5일 만에 카메라 앞에 서서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비상계엄 조치는 야당 경고를 위한 통치행위”였고, 이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나”라며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뒤엔 “나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며 사퇴도 거부했습니다. 지난 7일 110초짜리 대국민 사과 담화를 하고 닷새 만에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29분짜리 궤변과 망발을 늘어놓았습니다.

1면에 담화 발표 사진을 쓰긴 써야겠는데 얼굴이 크게 나오는 사진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부터도 보기가 싫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회의 참석자 모두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아침 신문을 보는 독자들의 하루가 분노와 모욕감으로 시작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1면엔 서울역에서 담화 방송을 시청하는 시민들이 앵글 대부분을 채운 사진을 썼습니다. 마감된 사진 중에 윤 대통령 얼굴이 가장 작게 보이는 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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