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후진국'. 최근까지 일본을 따라붙던 대표적인 수식어다. 디지털정부 순위 하락, 여전히 사용되는 팩스와 인감 문화, 느린 클라우드 도입 속도는 일본의 디지털 전환이 세계 흐름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2021년 디지털청을 출범시키며 국가적 디지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기술은 언제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빠르게 진화한다. 일본은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 네트워크, 특히 AI무선접속망(AI-RAN), 5G-어드밴스드 단독규격(5G-A SA), 전광통신망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체계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과거 3G에서는 강국이었지만, 4G에서 글로벌 생태계를 놓치며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일본은 그 실패를 정확히 분석했다. 그 결과 지금 반격 전략을 만들어 실행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의 AI-RAN 협력이다. AI-RAN은 AI를 활용해 기지국의 자원 할당, 전력 소모, 트래픽 관리를 자동 최적화하는 지능형 무선 네트워크다.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도입해 기존 기지국 기능을 가상화하고, 원격수술과 같은 초정밀 AI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차세대 AI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네트워크 고도화를 넘어 AI 시대의 인프라 플랫폼 전략에 가깝다.
여기에 일본은 5G-A SA 기술을 바탕으로, 6G 전환 전까지 실질적인 통신망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SA 구조는 기존 4G 기반이 아닌, 독립된 5G 가상전용망을 구성해 서비스에 특화된 초저지연·초신뢰·초고속 통신을 구현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자율주행, 원격의료, 확장현실(XR) 등 산업 수요에 맞춰 실증 중이며, 무너진 5G 생태계의 복원과 6G 기반 구축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적 브릿지'로 활용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일본의 전광통신망(All-Photonics Network) 전략이다. 전기신호가 아닌 광신호만으로 데이터를 종단 간 처리하는 이 구조는 지연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전력 소모는 기존 대비 1/100 수준까지 낮춘다. NTT는 이를 'IOWN 프로젝트'로 구체화해 AI, 디지털 트윈, 엣지 컴퓨팅 등 미래 서비스를 위한 국가 백본망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5G 커버리지와 속도를 갖췄지만, 6G·AI 네트워크 고도화와 산업 생태계 연계 전략은 아직 미진한 상태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우리가 5G 초기 상용화의 성공에 안주한다면 일본이 4G에서 그랬던 것처럼, 6G라는 다음 패러다임의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과거 3G의 영광에 기대다 4G LTE와 스마트폰 생태계를 주도하지 못해 시장을 빼앗겼고, 그 교훈을 되새기며 다시 뛰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실패를 따라가지 말아야 할 차례다.
우리나라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고, 글로벌 6G 생태계 선점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6G·AI 네트워크 중심의 국가 전략이 시급하다.
첫째, AI-RAN와 5G SA가 적용된 하이퍼AI 네트워크로 고도화하여 네트워크가 스스로 판단·운영하고, 초정밀·초공간 AI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초성능 인프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2030년 6G 상용화 전까지 5G-A SA 기반으로 첨단 6G 기술들을 적용해 시연·시범서비스를 제공하고 침체된 생태계를 복원하며, 장비·단말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 셋째, 모든 가정과 건물에 전광통신망을 보급해 모두의 AI가 가능한 기반을 갖춰야 한다. 넷째, 노후화된 4G를 Open-RAN 등으로 현대화하여 저전력 탄소저감을 실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I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등 첨단 AI 네트워크 산업을 차세대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고, 글로벌 기술 동맹을 넓혀야 한다.
AI는 데이터와 컴퓨팅 위에 서 있지만, 그 모두를 연결하는 것은 네트워크다. 이제, 모두의 AI는 모두의 네트워크에서 시작돼 한다.
나성욱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지능형네트워크단장 surha@ni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