쿱찬 “트럼프 귀환에 세계 경제 분열 위기…다극화 세계 촉진할 것”

2024-12-31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교수

트럼프는 고립주의 충동 지닌 일방주의자

관세 공약 실현되면 1930년대 회귀 우려

김정은과의 협상 우선순위 아냐

계엄 사태 닥친 한국, 시험 통과할 것

한·미·프랑스 ‘실패한 민주주의’ 전락은 모두에 위험

미·중 신냉전 구도와 유럽과 중동에 드리운 두 개의 전쟁, 북한·중국·러시아·이란 간 연대 등으로 혼돈의 연속인 세계 질서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관세 폭탄과 방위 분담 압박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일(현지시간) 백악관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교수(66)는 경향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재집권이 다극화 세계로의 전환을 촉진할 것이며, 관세 계획은 “지경학적 분열”을 초래해 한국 등에 경제적 충격을 안길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고립주의 외교사를 집대성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전 종식을 위한 협상 필요성을 언급해 온 그는 “합의를 만들려는 트럼프의 거래주의는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국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와중인 지난달 11일 메릴랜드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한국의 위기가 “시스템의 회복력”을 보여줬다면서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정치적 중도주의를 세우는 것”이라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분야 성과와 한계를 평가한다면.

“미국을 자유민주주의 규범을 수호하는 이전의 위치로 돌려놓았다. 다자주의에 복귀하고 트럼프가 훼손한 동맹관계를 재건한 것도 성취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동아시아의 동맹들은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한일관계도 개선됐다. 동아시아판 나토는 아니지만 부분의 합보다 큰 격자 구조의 동맹 관계가 나타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바이든은 ‘외교 대통령’이 되었는데, 어떤 면에서 냉전 시대처럼 공화당과 민주당이 자유 세계 수호를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미국과 세계의 변화를 과소평가했고, 과거의 방식을 가져와 이전의 세계(world as it was)를 위한 거대 전략을 추구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긴 이유 중 하나다.”

-바이든이 강조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는 약간 시대에 뒤처진 것이었나.

“약간이 아니라 매우 그랬다. 세계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사이의 투쟁으로 설명하려 한 것은 실수였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전은 이념적인 진영을 넘어서 함께 일해야 한다는 데 있다. 바이든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우리 대 그들’이라고 했을 때 세계 대부분이 ‘선택하지 않고 관망할 것’이라고 응답한 것이 내겐 상당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매우 유동적인, 인도의 표현을 빌리면 다중 연대(multi-alignment) 세계에 살고 있다.”

-트럼프의 재집권이 그와 같은 세계 변화를 촉진할까.

“트럼프는 다중 중심(multi-center), 다극화(multipolar) 세계로의 전환을 촉진할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움직이거나, 움직여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바이든 정부는 역사를 ‘일시정지’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사의 진보를 멈추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1인자가 부상하는 도전자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보통 강대국 전쟁이 벌어진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경쟁자(peer competitor)다.”

그는 중국의 부상과 인도의 영향력 확대 등으로 힘의 역학이 달라진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시스템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구질서”라고 말했다. 민주당 행정부 고위 외교관료 출신으로 “트럼프에 투표하지 않았다”는 그가 “트럼프가 새로운 질서 모색을 위한 논쟁을 촉발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트럼프 집권 2기에 국제 문제 개입을 꺼리는 고립주의 색채가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트럼프는 고립주의적 충동을 지닌 일방주의자(unilateralist)”라며 일방주의 수단인 ‘관세 무기화’ 정책에 우려를 표했다.

-트럼프의 관세 공약이 무역전쟁을 촉발할 가능성은.

“관세 공약이 부동산 거물 특유의 기선 제압을 위한 초기 입장인지, 정말로 진지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우리가 중국에 7㎚(나노미터) 이하 반도체칩을 팔지 않고 투자제한을 하기는 하지만, 교역은 활발하고 지정학 차원과 달리 지경학적으로는 아직 분열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중국을 고율 관세로 때린다면 세계 경제가 쪼개질 것이고 상대국들이 보복해 1930년대로 돌아갈 것이다. 중국과의 단절이 가져올 경제적 결과는 한국, 일본에도 엄청날 것이다. 관세 인상은 미국인들이 코스트코와 월마트 등에서 사는 상품 가격도 올릴 것이므로 작동할 수 없다. 관세로 미국 중산층을 재건한다는 아이디어도 거짓말이다. 미국에 반도체, 전기차, 냉장고 생산공장 1~2개는 지을 수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 제조업 중심지로 돌아가는 건 말이 안 된다.”

-트럼프가 최우선 과제로 언급하는 우크라이나전 조기 종전을 위한 현실가능한 해법이 있다면.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영토)의 80% 정도가 살아남고, 우크라이나가 자위권을 갖고 서구에 밀착되어 번영하는 방안을 성공으로 정의할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최전방 중심으로 휴전하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영구 중립지대화, 서방의 무기 지원 중단, 나토군의 동부전선 철수 등을 요구하는 경우다. 우크라이나를 (재침공) 위협에 노출시키므로 수용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들의 요구는 이해하지만, 아마도 당분간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일방주의에는 다른 이들의 문제에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얽힘에 대한 반감’이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전략적 의무를 확장하는 일에 매우 조심스럽다. 합리적인 생각이다. 미국과 동맹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되 직접 참전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건 3차 세계대전을 감수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나토 확장은 우크라이나가 공격받을 경우 3차대전으로 가도록 의무화한다.”

-북한군의 파병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변수로 작용할까. 유럽과 인도태평양의 안보가 연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푸틴이 전면 동원령 없이 당분간 버틸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다만 북한군 파병이 (전장에서) 게임체인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목하는 건 파병이 북한에 미칠 영향이다. 푸틴이 평양에 탄도미사일 (기술) 등을 지원할 경우 북한이 러시아를 배후로 더 도발적이고 위험하게 행동할 수 있다.”

-트럼프의 방위 분담 확대 요구가 동맹과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으로 보나.

“동맹 관계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트럼프에게 동맹은 거래 파트너일 뿐, 심오한 커뮤니티의 일원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서구 동맹을 해체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토 탈퇴나 주한미군 철수 위협은) 동맹들이 더 많은 돈을 내게 하려는 차원이다. 실제로 나토와 한국, 일본 등이 방위 노력을 강화했다. 트럼프로선 ‘내 말이 먹혔다’고 할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첫 재임기인 2017년부터 국가안보전략의 목표를 ‘중국 견제’로 확실히 옮겼다. 트럼프 외교안보팀이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전쟁 조기 해결을 강조하는 것도 중국에 대한 전략적 초점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시에 쿱찬 교수는 “트럼프는 외교적 뼈대나 전략적 비전이 전혀 없는 인물”이라면서도 러시아·중국 등과 “합의(deal)를 만들려고 하는 거래주의(transactionalism)는 필요한 접근”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중국의 행동과 관련해 글로벌 강국의 부상에 따른 정상적인 것과 팽창주의적 공격에 해당하는 것을 파악하고, 후자는 멈춰야 한다. 지금 중국은 1898년의 순간(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 승리로 패권국으로 부상한 계기)을 통과하고 있다. 누구도 1인자로 영원히 남지는 못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만·남중국해·홍콩·신장 등을 놓고 중국과 으르렁거리고 싸우더라도 기후변화나 북한 문제에서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지만, 중국은 모든 것을 ‘패키지딜’로 생각했던 것 같다. 트럼프가 중국과 더 나은 관계를 만들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적어도 푸틴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화하는 것을 매우 편안하게 여길 것이다.”

-트럼프가 북한과 비핵화를 놓고 협상할 것으로 보나.

“트럼프에게는 다른 우선순위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 중국, 중동 지역 확전 우려와 이란 관련 대응이 김정은과의 추가 정상회담보다 시급하다. 북한 비핵화라는 개념은 구식(obsolete)이 되었다. 비핵화가 일어난다면 통일 또는 북한 정권이 사라진 이후일 것이다. 지금의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내가 만약 그들과 어떤 종류의 외교를 하려 한다면 비핵화 대신 안정성을 의제로,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 등 멍청한 도발적 행동을 그만두고 그들의 핵 야욕을 봉쇄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것이 핵무기 폐기를 설득하러 왔다고 협상을 시작하는 것보다 생산적일 것 같다.”

-트럼프가 한국의 안보 우려를 도외시한 합의를 북한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그 경우 한국 내 독자 핵무장 여론이 높아질 수도 있다.

“(북·미) 합의에 어떤 신뢰구축 조치가 담길지, 남북 간 폭넓은 화해 조치와 연결되어있는지 등 내용이 중요하다. 가까운 미래에 한·일이 핵무장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당선 그 자체가 한국, 일본, 심지어 독일에서 핵 억제력에 대한 논쟁을 촉발할 것이다. 미국의 정치적 역기능과 신뢰할 수 없는 모습이 외국 정부로 하여금 다른 계획에 대해 생각할 시점이라고 여기게 할 것이다.”

-트럼프 시대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약화로 이어질까.

“권력 분산으로 미국은 이전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리더 역할은 힘이 작아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힘의 범위가 아닌 성격이다. 미국은 매우 분열되어있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초당적 합의가 이뤄진 중국 문제를 빼고 (우크라이나 등) 다른 외교정책에서 양당은 결별했다. 미국이 국내 문제를 해결하고 초당주의와 정치적 중도주의를 다시 세우기 전까지 안정적인 리더십 달성은 힘들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 외교기조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는.

“워싱턴 외교정책 커뮤니티에서 다른 질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아직 수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넓은 미국 유권자층은 이를 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장에서 죽어가는 미국인은 없지만 수십억달러 예산이 배정됐고, 미국인들은 물 새는 학교 지붕, 노후한 도심 교량을 보면서 (대외 지원과의) 상충관계(trade-off)를 느끼고 있다. 트럼프가 5000마일(약 8000㎞) 떨어진 곳의 문제가 아닌 남부 국경 등 우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것을 많은 이들이 응원한 이유다. 물론 지지 지속 여부는 그가 국내에서 하는 일에 달려 있다. 만약 정적을 체포하거나 군대를 동원해 이주자에게 수갑을 채워 국경에 떨구고 오는 식의 일을 한다면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계엄 사태를 접하고 든 생각은.

“계엄 선포는 끔찍한 일이지만 6시간밖에 지속되지 않았고 탄핵소추 절차 등이 규칙에 따라 작동했다. 어떤 면에서 시스템의 회복력을 증언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종언은 아니며, 한국은 이 시험을 통과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달 동안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자.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중도주의가 설 땅을 잃게 됐다. 프랑스와 독일은 내각이 무너졌다. 한국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다. 이 모두는 자동화로 인한 사회 경제적 혼란, 소셜 미디어로 인한 당파적 분열의 증폭, 정치적 중도의 공동화 등 같은 현상의 한 부분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한국이 반자유주의적 또는 실패한 민주주의로 전락하면 세계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미국, 또 세계적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나.

“나는 시진핑, 푸틴보다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내부 위협을 더 걱정한다. 밤잠을 설칠 정도다. 우리가 먼저 내부를 정비하지 않으면 러시아와 중국에 손쉬운 먹잇감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궁극적으로 승리한다. 다만 자국과 세계 시민들에게 민주주의가 그들의 삶을 개선하고 자유를 수호한다는 점을 보여줄 때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 최대 위협이라고 생각하나.

“트럼프만이 아닌 트럼프 현상을 우려한다. 정당 전체가 위험한 의제를 용인하는 데서 나아가 완전히 동의하고 있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트럼프의 높은 대중적 인기 때문에 알 만한 정치인들조차 그를 추종한다. (트럼프 자택이 있는) 마러라고에서 2기 행정부 면접을 통과하려면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겼다고 답해야 한단다. 미국 정부에서 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큰 문제이지 않은가.”

찰스 쿱찬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겸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미국 패권 ‘이후’의 다극화된 세계를 직시하고 이에 대비할 것을 설파해 온 국제정치학자다. 자신을 실용적 현실주의자로 소개하는 그는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 담당 국장, 하원 외교자문위원 등을 지내며 워싱턴의 외교정책 결정에도 관여했다. 2020년 저서 <고립주의>에서 미국 건국 이래 이어져 온 고립주의와 미국 예외주의 전통이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미국 우선주의로 표출된 과정을 탐구했다. 그 외에 <미국 시대의 종말> <적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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