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비자 워킹그룹’ 추진
양국 외교차관 회담 열어 방안 논의
주한미대사관에 별도 데스크 등 검토
취업 가능 H-1B 쿼터 확보도 나설 듯
WSJ “더 많은 美 임시비자 필요” 지적
한국과 미국 정부가 14일 외교차관 회담을 열어 ‘비자 워킹그룹’을 구성해 미국 내 공장 건설 활동을 위한 단기 파견자용 비자 등 비자 사각지대를 해소하기로 했다. 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317명을 체포, 구금된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미국에 대한 외국 기업의 원활한 투자를 뒷받침할 새로운 비자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미국 내부에서 커지는 상황이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을 열어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워킹그룹 신설 방안을 논의했다. 워킹그룹은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을 위해 주한 미국대사관에 별도 데스크를 만드는 등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할 전망이다.

일단 정부는 이번에 문제가 됐던 B-1 비자 등 비자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겠다는 생각이다. B-1 비자는 기업들이 미국 출장에 주로 활용하는 단기 상용 비자다. B-1 비자 소지자는 미국 밖에서 제작·구매한 장비를 설치·시운전하거나 현지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두고 이민·보안·외교 등 미국 내 각 기관의 해석이 갈리면서 문제가 됐다. 한국과 미국 간의 해석 차이를 통일하는 것도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비자를 만들거나 현지 취업이 가능한 H-1B 비자 한국인 쿼터 확보 등의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대미 투자가 확대되면서 공장 설치와 인력 훈련 등을 위해 수개월간 미국에 머물러야 하는 인력이 늘었지만 이런 상황에 맞는 비자가 없다. 또한 H-1B 비자를 받을 수 있는 한국인 수를 늘릴 방침이다. 기술·공학 등 전문직종 외국인을 위한 H-1B 비자는 매년 발급 대상이 제한돼 있다. 게다가 추첨제로 운영돼 현실적으로 발급이 어렵다.
경제계에서는 미국 비자 체계가 지나치게 세분화되고 심사도 까다로워 기업, 근로자 모두 큰 불편을 겪고 사업 안정성도 깨지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기 체류 비자에 의존해 인력을 파견하던 기업들이 이번 사태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며 “미국 비자 제도의 일관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미국 내 생산 차질과 투자 철회 같은 심각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일단 비자 신설과 한국인 쿼터 확대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기존 B-1 비자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공장 건설을 위해 출장 가는 경우에는 원청·협력업체를 가리지 않고 보다 유연하게 B-1 비자를 발급해 달라고 미국 측에 요청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2일 “기업 투자와 관련된 분들이 가장 빠르게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같은 날 “새로운 비자를 만드는 방안을 포함해 미국 비자 발급 및 체류자격 시스템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한·미 간 워킹그룹을 통해 추가적인 협의를 거칠 예정”이라고 전했다.
비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미국 내에서도 커지는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이번에 체포, 구금된 한국인들과 같은 노동력이 미국에는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WSJ은 “어떤 경우에서든 조지아에서와 같은 급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외국인 투자를 억제하는 요인”이며 “더 많은 해외 투자에는 더 많은 미국 임시 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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