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 반석 위에 세운 전파와 모래 위의 전파

2025-02-03

필자는 20여년간 강단에서 전자기학을 강의해 오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현대물리학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발간되고 출판되는 단행본 및 논문지를 수집하고 있다. 그 목적은 교육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저자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해 어떤 생각과 어떤 개념에 바탕을 두고 주어진 물리적 현상을 얼마나 독특하게, 어떤 효과적인 매개체를 활용해 설명하는지에 대한 비교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전자파는 170년 전에 발표된 맥스웰의 논문에 바탕을 두고 있다. 뒤이어 올리버 헤비사이드에 의해 현대화된 수식들은 철저한 연구와 검증을 통해 전자파기술의 이론 및 실험적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이렇게 현대화된 수식은 4차원(공간의 3차원과 시간을 포함)의 해석을 동시에 요구하므로 초기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수식을 간략 명료하게 하기 위해 페이저(phasor)를 이용해 주로 주파수 영역에서 다루었으나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그 변화는 시간영역이라는 새로운 장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컴퓨터의 발전속도가 공헌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도스(DOS) 운용체계 기반의 IBM PC의 등장, 애플의 맥킨토시, 인터넷의 기초가 된 네크워킹 기술등 컴퓨터의 발전속도는 AT, XT세대를 넘어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다.

이에 발맞춰 1960년대 간단한 알고리즘으로만 존재했던, 그리고 매우 제한적인 공간과 시간영역에서만 맥스웰 방정식을 동시에 적용해 계산할 수 있었던 수치해석 계산방식이 조금씩 물리적으로 넓은 해석영역으로 확장되면서 GUI(Graphic User Interface)의 발전과 결합돼 애니메이션 탑재기능을 활용해 전파의 전달현상을 상상속에서만이 아닌 직접 화면에서 생생하게 체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사용자 친화적인 기능이 탑재된 시뮬레이션 툴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으며 서로 경쟁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이러한 툴들의 연구용 및 상업적 적용가능은 충분히 검증이 됐으며 정확도 또한 거의 성숙단계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내비게이터가 나오면서 길찾기에 대한 감각이 많이 떨어진 만큼 시뮬레이션 툴의 발전속도와 더불어 전파해석 결과분석에 있어서 물리적 감각이 많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즉, 어설픈 전파쟁이가 탄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지난 20여년간의 변화를 살펴보면 컴퓨터의 발전속도와 함께 전자기학 관련 단행본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매트랩(MATLAB)을 활용하고, 또한 그 실행코드도 제공해 학생들이 직접 경험해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전파전공 학생들이 전파현상을 편하게 볼 수는 있어도 그 구체적인 해석 능력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까 매우 걱정되기도 한다.

또 하나의 변수로는 올해부터 많은 대학들이 자유전공학부(학교에 입학한 후 모든 전공에 진입할 수 있는 신입생)의 도입을 확대하고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외적 시대 흐름에 따라 거의 모든 대학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학생들을 생각해 보면 마치 오래전 덴마크 물리학자인 닐스 보어(Niels Bohr)가 제안한 원자구조이론으로 원자핵 주위를 특정한 궤도를 따라 회전하며 그 나름의 에너지 준위를 가지는 자유전자의 모델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이 학생들은 자유스럽게 이동하며 특정한 전공이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몇 년간 탐색하며 종래에는 본인이 가장 적성에 맞는 전공으로 졸업하게 된다. 각 전공(원자핵)이 이러한 자유스러운 영혼(자유 전자)을 가진 학생들을 끌어 당기기 위해서 교수들이 속한 전공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홍보하고 전시해야만 하니 교수들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울 수만은 없는 환경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설픈 전공자가 되지 않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개념있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피곤을 감수하며 교육할 의지도 있다. 단지 모래 위에 집을 짓지 않고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하듯이 전공졸업장에 걸맞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신입생들에 대한 학교의 세심하고 치밀한 전파관련 교육프로그램의 개발에 기반한 집중적인 관심과 이에 대한 학생들의 적극적인 반응이 필요하다. 이는 '어설픈 전파인'이 아닌 '능숙하고 숙련된 전파인'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재욱 한국항공대학교 교수·한국전자파학회 사업부회장 jwlee1@k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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