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택배회사 물류 터미널에서 택배를 지역별로 분류하는 업무에 외국인 투입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내국인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상·하차 업무만 허용하고 분류 작업을 금지하는 것은 불합리한 규제라는 문제 제기에 따른 것이다. 다만 노동단체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빈 일자리 채우기에만 급급하다며 반대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17일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국무총리 규제혁신추진단은 14일 열린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5개 분야 총 12건의 개선 과제를 보고했다. 주요 과제로는△택배서비스 산업 규제 혁신 △국가자격증 응시 자격 제도 개선 △비영리법인 설립 및 운영 규제 혁신 △데이터센터 미술작품 설치 의무 완화 △폐플라스틱 재활용 촉진 방안 등이다.
가장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이는 과제는 외국인의 택배 업무 범위를 넓히는 택배서비스 규제 혁신이다. 2023년 총 택배 물량은 51억 5000만 개로 전년 대비 22.45% 성장했다. 매년 증가 폭은 가팔라지고 있지만 택배 인력은 물동량 증가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만성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 2021년부터 조선업과 건설업 등으로 제한돼 있던 비전문 외국인력 취업 범위를 택배 상·하차 업무까지 풀어줬다. 하지만 택배 분류 작업 투입은 여전히 가로막혀 있었다.
분류는 화물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화물에 붙어 있는 송장을 보고 지역별로 나누는 업무인데 눈썰미가 좋아야 하고 손동작도 빨라야 해 아직까지 외국인에게는 개방되지 않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택배 터미널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상·하차 업무만 허용되고 이와 연속되는 작업인 분류 업무는 할 수 없어 인력난 해소에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며 “올 상반기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통해 외국인이 분류 작업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택배노조는 “택배 노동자에 대한 근본적인 처우 개선이 아니라 외국인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겠다는 전형적인 돌려막기식 땜질 대책”이라고 반발했다.
이 밖에 규제혁신추진단은 대학 졸업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국가자격증 응시 자격 제도도 손질하기로 했다. 학교 지식보다 현장 지식이 중시되는 현 추세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이에 기존에 전체 544종 기술자격증 가운데 186종에만 적용되던 과정평가형 자격 제도를 전체로 확대하고 대졸 등 응시 자격 제한도 없애기로 했다.
민법상 비영리법인 설립과 관련해 진입 규제도 완화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허가주의를 채택하고 있던 일본이 2007년 준칙주의로 개편한 사례를 참고해 주무관청의 허가 없이 자유 설립이 가능한 준칙주의 또는 신고주의를 도입할 방침이다. 비영리법인의 정관 변경, 예결산 보고 등 운영 과정에서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줄이며 미비했던 비영리법인 간 합병·분할에 대한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데이터센터 건설시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미술작품 설치 의무도 일부 덜어주기로 했다. 방송통신시설 중 연면적 1만 ㎡ 이상의 건축물에는 건축 비용의 0.5~0.7%에 해당하는 미술작품 설치가 의무화돼 있는데 데이터센터에는 최저요율인 0.5% 적용으로 부담을 덜어줄 계획이다.
유일호 규제개혁위원장은 “이번 5대 분야의 규제 혁신 과제를 소관 부처와 긴밀히 협력해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향후에도 덩어리 규제 개선을 위해 중단 없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