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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디단 열대 과일, 코를 찌르는 향신료 냄새와 맵고 짠 음식, 쨍한 색감의 바다, 모터사이클 굉음 가득한 거리. 동남아시아 하면, 뭐든 강렬한 게 떠오른다. 그러나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은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불심 지극한 이 고도(古都)는 한 마디로 ‘저자극의 도시’라 할 수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겨울, 심심함이 최대의 매력인 루앙프라방을 다녀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의 기품
루앙프라방은 14~18세기 인도차이나에서 위세를 떨쳤던 란쌍 왕국의 수도였다. 16세기 비엔티안으로 천도한 뒤 지금까지 라오스 제2의 도시라는데, 인구는 6만명(라오스 783만명) 수준이다. 유네스코는 1995년 루앙프라방 중심가 약 70만㎡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란쌍왕국 시절의 건물과 프랑스 식민지 유적이 오롯이 남아 있어서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도심 풍경만 봐도 세계유산 도시의 진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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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새벽. 오전 5시 30분께, 중심가인 씨싸왕웡 거리에서는 날마다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에게 공양하는 탁발(托鉢) 의식이 진행된다. 밥·과자 등을 바구니에 담아 파는 상인 때문에 탁발도 관광상품으로 전락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수백년을 이어온 전통을 보고 있으면 숙연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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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에는 도심에만 33개 사원이 있다. 사원 주변으로는 프랑스풍 건물에 들어앉은 카페가 많다. 커피를 홀짝이며 사원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낮잠 자는 개와 고양이를 바라보면 누구나 느긋해진다. 고요했던 거리는 오후 5시부터 활기를 띤다. 매일 밤 약 700m 거리에 차량 통행을 막고 야시장을 연다. 고산족이 만든 수공예품을 사고, 볶음국수·꼬치구이 등 저렴한 현지식을 맛보려는 관광객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옥빛 꽝시폭포에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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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날 며칠을 카페와 야시장, 사원만 들를 순 없겠다. 루앙프라방에도 즐길 거리가 다채롭다. 관광객 사이에서는 ‘메콩강 선셋 크루즈’가 가장 인기다. 배는 50인승부터 다과를 즐기며 소수만 이용하는 고급형까지 다양하나 일몰을 보는 방법은 비슷하다. 우선 목선을 타고 강을 쏘다니며 주변 산세와 마을 풍경을 구경한다. 해가 산에 걸릴 즈음 멈춰 서서 낙조를 감상하는 식이다. 인도차이나의 젖줄인 메콩강을 물들인 석양은 역시 황홀했다. 사위가 적막에 잠긴 시간, 화려한 조명을 밝힌 채 빠른 비트의 음악을 쩌렁쩌렁 튼 배 한 척이 지나갔다. 이런, 익숙하다 싶었더니 한국 트로트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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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자리한 ‘꽝시 폭포’도 놓칠 수 없다. 깊은 산 속에 거짓말처럼 숨은 옥색 폭포다. 물빛의 비밀은 칼슘과 탄산염이란다. 겨울이어서 구경만 하고 발을 돌리는 사람이 대다수지만 더러 수영을 즐기는 이도 있다. 발이라도 담글까 고민하고 있는데, 영국 노인이 “뭘 고민해? 인생 한 번뿐인데”라며 충동했다. 몸을 던졌다. 머리털이 쭈뼛 서고 온몸에 닭살이 돋았지만 5분은 견딜 만했다.
폭포 투어 방법은 여러 가지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 폭포와 코끼리 농장, 전망 좋은 카페 등을 들르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택시기사에게 요청해서 원하는 곳만 둘러보거나 호텔의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베트남 쌀국수 저리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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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에는 남다른 사연을 지닌 숙소도 있다. 2008년 개장한 ‘아만타카(Amantaka)’는 프랑스가 1923년에 지은 병원을 활용한 호텔이다. 극진한 서비스와 선셋 크루즈를 비롯한 체험 관광, 전통 공연을 보면서 먹는 저녁 식사, 아늑한 정원도 좋았지만 100년 넘는 시간을 품은 건축물이 단연 인상적이었다. 호텔 건물 중 5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호텔에서 머문 뒤 2016년 산문집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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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썼듯이 라오스의 매력을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음식을 빼놓을 수 없겠다. 흔히 라오스 음식에는 베트남과 태국이 공존한다고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이를테면 태국에서 흔히 먹는 파파야 샐러드나 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 ‘반미’는 라오스에서도 일상적으로 먹는다. 하나 라오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도 많다. 쌀가루와 타피오카 전분으로 쫄깃쫄깃한 면발을 내는 쌀국수 ‘까오삐약’이 대표적이다. 닭고기로 육수를 내고 소 선지를 넣어 국물 맛이 깊고 진하다. 반찬이나 간식으로 많이 먹는 민물 김도 중독성이 강하다. 쌀국수를 먹든 준수하게 차려진 현지식 정찬을 먹든, 채소를 많이 내주고 음식 간도 세지 않으니 ‘저자극 음식’을 선호한다면 루앙프라방 여행이 더 즐거울 법하다.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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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루앙프라방 가는 직항편은 없다. 비엔티안 또는 베트남·태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거나 비엔티안에서 급행열차를 타면 된다. 국내 온라인 여행사를 통해 기차표를 살 수 있다. 열차 편도 2시간, 약 5만원. 루앙프라방의 2월 낮 최고 기온은 30도, 아침 최저 기온은 15도 정도다. 라오스 화폐 ‘낍’은 미국 달러를 가져가서 환전하거나 외화 체크카드를 활용해 ATM에서 인출하길 권한다. 1000낍 약 67원. 루앙프라방에서는 자전거를 빌려타거나 택시로 이동하면 편하다.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에서 쓰는 그랩(Grab)이 라오스에서는 안 통한다. 로카(Loca)라는 앱을 내려받아서 가자.
루앙프라방(라오스)=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