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살이 그리고 먹고사니즘

2024-10-10

올 초 퇴사를 하고 나니 휴대전화가 조용해졌다. 좋으면서도 씁쓸한 기분, 노는 게 제일 좋다고 하지만 젊은 나이에 갑자기 일이 없어지니 얼떨떨하고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나는 K-장녀 아닌가. 가뜩이나 혼자 산다고 걱정이 많은 부모님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고, 앓는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다.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가족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라도 지역에 잘 뿌리내리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시에 드디어 ‘나도 지역의 일자리 문제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는군. 한 번 겪어보자!’ 하는 괜한 책임감과 출처 없는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일을 구하게 된 건 취업사이트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을 다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하던 전화기에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전화 올 곳이 없는데 누굴까 하며 받은 전화 덕분에 처음으로 프리랜서로 일을 하게 되었다.

바로 지역 결혼이주여성들과 그들의 자녀인 중도입국 아동들의 한국어 선생님이 되는 일이었다. 중간지원조직에 근무 당시 이주 여성분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 관련 사업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후 지원 기관에 방문 할 기회가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협력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관계들이 쌓여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자격이 필요한 일이었다. 일과 병행 가능한 수준에서 관심 분야 자격증을 준비했고 그 일과 관련된 지역 상황을 알고 있었으며 관계자와 소통했던 경험을 통해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아마도 크고 복잡한 도시에서는 이렇게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이 귀하고, 관계망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농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정보와 기회는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으나, 공정성은 도시나 지역이나 똑같다. 얼마 전 한국어 강사를 병행하며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추천을 받아 지원했으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자격을 갖추고 경쟁력을 만들고 업무의 특성과 맞아야만 기회가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도시와 같은 근무 조건을 기대한다면 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같은 프리랜서라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는 화려한 조건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나의 상황과 관심사를 기억하고 관심 분야의 일을 시작해볼 기회를 받았다는 점이 감사했다. 사수와 동료의 도움으로 함께 일을 하던 체계에서 프리랜서로 홀로 일을 해보는 경험도 소중했다. 나에게 맞는 업무 체계는 무엇인지 비교해볼 수 있었다. 새로운 분야의 일을 통해 앞으로 삶의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특히 소비 습관을 다시 점검해보게 됐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사용하지 않는 신용카드를 처분했다. 불안정한 수입에 맞추려면 지출을 다이어트해야 지속 가능한 지역살이를 이어갈 수 있다.

완주살이 7년 차를 앞두고도 아직 처음 해보는 일이 한가득하다. 왜 불안하지 않겠냐마는 이젠 피할 수 없는 불안은 수용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나에게 기회를 주는 지역살이의 장점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러고 보니 이 청춘예찬의 지면 역시 일을 하며 맺은 다양한 인연을 통해 받은 연락이 시작이었다. 달리 보면 보이는 것들과 그런 시선을 키워준 지역에서의 삶에 새삼 감사하다.

조아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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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살이 #취업 #자격증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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