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 전 그림 속 솟대서 영감…자연이 최고의 스승”
“솟대란 게 단순하지만 묘해요. 새 형상의 나뭇가지를 찾아 장대 위에 꽂으면 그걸로 완성이에요. 그런데 적당한 재료를 바란다고 숲을 헤매봐야 찾아지질 않습니다. 인내와 만남의 결과가 곧 솟대죠. 자연의 날 것을, 희망을 담은 조형물로 끄집어낸 게 제가 한 역할입니다. 자연이 최고의 스승입니다.”
솟대 대중화를 이끈 윤영호(80) 능강솟대문화공간 관장이 22일 자신의 솟대 작품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 자락에 있는 능강솟대문화공간은 솟대를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의 전시·체험 공간이다. 2005년 문을 연 이곳엔 아기 새를 업은 어미 새, 부부 새 형상, 나뭇가지에 여럿이 앉은 새 무리 등 300여 점의 솟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 앞에 서면 솟대를 배경으로 한반도 모양의 청풍호가 보인다.
솟대는 기러기나 오리, 까마귀 등 새 모양의 나무를 높은 장대 위에 올려놓은 전통 조형물을 말한다. 고조선 시대부터 시작돼 삼한시대에는 소도(蘇塗·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지)에 솟대를 세워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다. 2004년 세계박물관협회 총회에서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공식 상징물로 선정됐다.
윤 관장이 솟대에 빠지게 된 계기는 1985년 권옥연 화백의 ‘산마을’이라는 그림을 보고 나서부터다. 서울의 한 미술관 관장으로 일하며 운보 김기창·천경자 선생 등 미술계 1세대 거장의 작품을 전시·기획하던 때였다.

“자연이 준 수만 가지 형상, 그대로 살려”
윤 관장은 “‘산마을’은 구릉진 산과 초가를 그린 반추상적 그림인데 배경에 외롭게 서 있는 솟대 하나가 큰 울림을 줬다”며 “태어나서 솟대를 본 게 처음이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림에서 느꼈던 감정을 조형물로 되살려보자는 생각에서 솟대를 만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윤 관장은 박물관 관장직을 내려놓고, 86년부터 권 화백을 비롯해 솟대를 아는 민속학자 등을 찾아 자문하고, 관련 서적을 찾아 공부했다. 윤 관장은 “다들 멀쩡한 직장을 버리고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만류했지만, 솟대 생각만 났다”며 “88년엔 서울을 벗어나 경기 성남시 판교 광교산 인근 오두막집을 빌려 작업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처음 1년은 나무를 깎아 솟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전국을 돌며 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새 형상과 비슷한 나뭇가지를 구해 껍질을 벗긴 뒤, 홈을 파고 이어 붙이기만 했다. 윤 관장은 “솟대는 희망을 상징하는 것인데 1년도 안 되어 작품이 정형화되고 있었다”며 “눈에 들어오는 재료를 구할 때까지 산을 탔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자연이 선사한 수만 가지의 형상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브론즈·컬러 솟대…솟대전시관 20주년 기념전
윤 관장은 99년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로 작업실을 옮겼다가, 2005년 제천시가 청풍호 시유지에 솟대전시관 건립을 지원하면서 현재의 장소에 자리 잡았다. 2007년 전시관을 찾았던 도올 김용옥은 ‘차세하유 갱선경 소도개벽 신천지’(此世何有 更仙境 蘇塗開闢 新天地·세상 어디에 이런 선경이 있겠는가. 솟대를 세운 신성한 성지가 새롭게 열리니 이곳이야말로 신천지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전시관 앞에는 윤 관장이 35년에 걸쳐 만든 솟대도 있다. 양팔을 벌린 나뭇가지에 새 11마리가 앉은 모습이다. 윤 관장은 “자연과의 조화, 옆에 앉은 새들과의 조화 등을 고려해 끼웠다 뺐다를 반복하다 2023년 완성했다”며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부터는 솟대 원형을 본떠서 청동으로 영구 보존하는 ‘브론즈 솟대’를 선보였다. 이 작업에는 홍익대 회화과를 나와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둘째 아들 태승(51)씨가 동참하고 있다.
태승씨는 “젊은 층이 솟대를 보다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야생화에 영감을 얻은 파스텔컬러 솟대도 아버지와 함께 제작했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다음 달 1일부터 한 달간 능강솟대문화공간 개관 20주년을 맞아 기념전을 연다. 솟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특별 전시와 연계 문화행사, 체험 활동 등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