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그림, 미래의 관객

2025-10-21

“저는 미술관에서 2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다 봤고, 대충 다 안다’가 되어, 놀랄 만한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2018년 뉴욕 구겐하임에서 처음 본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은 ‘본 적 없는 놀라움’ 자체였습니다.”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의 미와 켄진 학예실장이 말했다. 18일 부산현대미술관의 국제 학술프로그램 ‘힐마 아프 클린트와 세계’에서다.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를 졸업한 1세대 여성 화가다. 칸딘스키보다 앞서 추상화를 내놓았지만,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82세에 세상을 떠나며 “일부 그림은 나의 사후 20년간 열람을 금지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생전에 간과되다가 뒤늦게 발견된 화가에 대중은 열광한다. 빈센트 반 고흐(1853~90)가 대표적인데, 힐마의 처지는 그보다 더하다. 사후 80년이 지나서야 전 세계적 신드롬을 맞고 있다. 지난봄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에서 연 그의 아시아 첫 회고전에는 14만 관객이 몰렸다. 이 미술관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전을 열었을 때와 비슷한 숫자다.

26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국내 첫 힐마 아프 클린트 회고전 역시 조용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힐마가 그토록 기다렸을 ‘미래의 관객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그림 중 하나가 백조 연작 중 1번(사진)이다. 52세 때 작품으로 어둠 속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백조와 부리를 맞댄 흑조의 고혹적인 대비가 눈길을 끈다. 백조와 흑조의 모습에서 구상과 비구상, 미술과 비미술, 남성과 여성을 넘어선 힐마 자신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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