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의 두번째 변론기일인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헌법재판관들이 자리에 착석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5.01.16. [email protected] /사진=류현주
"헌법재판마저 패밀리 비즈니스로 전락해서야 되겠나."(30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를 향한 비판의 강도를 연일 올리고 있다. 특히 문형배·이미선·정계선 등 진보성향 헌법재판관을 향해 화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결정 권한을 쥔 헌재를 흔들어 탄핵 심판에서 유리한 구도를 점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보수 지지층 결집을 통해 탄핵 심판 이후를 대비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로 일컬어지는 헌재를 향한 이러한 직접적인 공격이 오히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문형배 헌재 소장 대행과 이미선·정계선 재판관을 겨냥해 "모두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공정성 논란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법연구회는 법원 내 진보 성향의 학술모임이다. 문 대행은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며 이 재판관과 정 재판관 역시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다.
권 원내대표는 "문 대행은 이 대표와 사법연수원 동기 시절부터 호형호제하며 정성호 의원이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보증한 인물"이라고 했다. 이어 이 재판관과 정 재판관을 향해서도 "이 재판관의 동생은 윤석열퇴진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고, 정 재판관의 남편은 탄핵소추대리인단 김이수 변호사와 같은 법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헌법 재판마저 패밀리 비즈니스로 전락해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에게 증인신문을 하고 있다. (사진=헌법재판소 제공) 2025.01.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도 이날 SNS(소셜미디어)에 헌법재판관들의 실명과 과거 판결 이력을 거론하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주 의원은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재판관은 '군 내 항문 성교'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6에 대해 '위헌'이라고 했고 에이즈 감염을 숨기고 성관계를 해서 균을 옮겼을 때 처벌하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제25조 제2호도 '위헌'이라고 했다"며 "이 재판관들의 국가관, 법의식에 기대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과연 맞겠나"고 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임명을 요구하고 있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이념 성향을 문제 삼고 있다. 5선의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NS에 "마 후보자는 인천민주노동자연맹에서 활동한 인물"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측도 헌법재판관들의 이념적 편향성을 문제 삼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대리인단은 "탄핵 심판의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미선 재판관 스스로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회피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 측은 탄핵 심판 첫 변론기일 전날인 지난 13일 정계선 재판관에 대해서도 기피 신청을 냈지만 기각당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헌재는 "헌법재판관들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며 "개인적 사정은 헌재 재판 심리에 결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2025.1.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이 이처럼 공정성·중립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헌재를 흔들어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유리한 구도로 끌어가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헌법재판관들의 정치 성향을 거론하며 색깔론을 자극하는 것은 보수 지지층에 소구하기 위한 맞춤형 전략이다.
여론재판의 성격이 짙은 헌재 심판의 특성상 지지층 결집을 통해 '탄핵 기각' 여론이 강해지면 헌재의 결정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어서다. 아울러 이념 성향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 헌재의 최종 결정에도 부담을 느끼게 하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탄핵 심판 이후를 대비하려는 속내도 읽힌다. 헌재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해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리더라도 보수층이 결집해 있다면 차기 대권 주자를 옹립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러한 국민의힘의 헌재 흔들기가 오히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등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도 나온다. 헌법 수호의 의무를 지고 있는 대통령이 오히려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려는 시도로 인식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헌재의 탄핵 심판의 경우 윤 대통령의 '헌법 준수 의지'가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과거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에서 검찰과 특별검사 수사를 거부한 점을 탄핵 사유 중 하나로 언급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앞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의 소환조사에 불응했고 체포영장 집행도 거부한 바 있다.
야당은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의 헌재 흔들기에 대해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반국가적 망동"이라고 비판했다. 이건태 더불어민주당 법률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 흔들기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에 대비해 불복할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이면 윤 대통령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인 헌법재판관 7명도 재판에서 손을 떼야 마땅하다"며 "자신들이 불리하다고 음모론을 퍼뜨리며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려고 드는 정당이 제정신인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