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축구는 언제나 중동세가 암초였다. 아시아 맹주를 자부했지만 중요한 고비마다 중동의 강호에 발목이 잡히는 일이 많았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직후였던 2003 아시안컵 예선의 오만 쇼크(2003년 1-3 패)를 비롯해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의 레바논 쇼크(2011년 1-2 패), 2024 카타르 아시안컵 4강에서 수모를 안긴 요르단 쇼크(0-2 패)까지 잊을 수 없는 아픔들이 적잖았다.
한국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조 추첨에서 일본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호주라는 부담스러운 상대를 모두 피하면서도 온전히 웃지 못한 것은 모랫바람으로 가득한 B조(이라크·요르단·오만·팔레스타인·쿠웨이트)에 배정된 영향이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도 고전의 연속이었다. 한국은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3차예선을 순항했지만, 조기에 본선행을 확정짓는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한 채 마지막 2연전(6일 이라크·10일 쿠웨이트)을 앞두고 있다.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매듭지을 수 있는 마지막 중동 원정의 상대가 기분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이라크라는 사실이 다행이다. 이라크는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당시 일본과 2-2로 비기면서 한국의 극적인 월드컵 진출을 도운 바 있다. 이른바 ‘도하의 기적’이다. 한·일월드컵 유치전에서도 라이벌 일본에 밀리지 않는 큰 힘이 됐는데, 그 이라크와 6일 오전 3시15분 이라크 바스라 국제경기장에서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9차전을 치른다.
4승 4무로 3차예선 B조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국은 이라크와 비기기만 해도 각 조의 2위까지 보장되는 본선행 티켓을 확보할 수 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시작된 월드컵 연속 본선 진출 횟수도 11회로 늘어난다. 처음 출전한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포함한다면 통산 12회다. 한국이 이라크에서 본선 진출을 확정지으면 10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쿠웨이트와 홈경기에서 여유롭게 월드컵 출정식에 나설 수 있다.
이라크가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한국의 우위는 분명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한국이 23위, 이라크가 59위다. 역대 전적에서도 한국은 이라크에 10승12무2패로 절대적인 우세였다. 최근 3경기에선 3전 전승이다. 과거 패배를 곱씹어도 석패 뿐이다. 한국이 마지막으로 이라크에 패배한 것은 2007년 아시안컵 준결승 당이 연장까지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패배한 경기인데 공식 기록은 승부차기 패배라 무승부로 남아있다. 정식 패배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0-1로 진 것이 마지막이다. 이라크 원정에선 1982년과 1990년 세 차례 맞붙어 2무1패를 기록했다. 여러모로 이라크 쇼크로 볼 만한 흔적은 없다.
1990년 과거 바그다드에서 선수로 이라크를 상대했던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55)은 35년 만의 원정에서 승리를 위해 마지막 담금질에 나섰다. 전술 훈련에서 포지션별로 복수의 선수를 두루 기용하면서 기량과 컨디션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고 있다. 상대인 이라크가 호주 출신 그레이엄 아널드 감독이 부임해 첫 경기를 치른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아널드 감독이 아시아 무대에서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지만 새로운 선수들과 발을 맞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홍 감독은 “이라크의 감독 교체로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감안해 이번 원정을 대비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