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붕괴 위험 속에서 겁도 없이 묵묵히 임무수행 하는 이 친구를 보며 더 용기 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 11일 경기도 광명시 신안산선 터널 붕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던 경기도북부특수대응단 장택용 소방위가 말한 ‘겁도 없는 이 친구’는 5살 암컷 저먼 셰퍼드 ‘남풍’이다. 남풍이는 신안산선 터널 붕괴 사고로 고립된 작업자를 찾기 위해 지난 12~15일 수색에 8차례 투입됐다. 작업자는 끝내 숨진 채 발견됐지만, 위험천만했던 현장에서 실종자를 찾을 수 있었던 데엔 남풍이의 역할이 컸다.

20년 차 베테랑 장 소방위에게도 신안산선 붕괴 현장은 최고로 험난한 구조환경이었다. 걱정하는 아내에게 “괜찮다”며 안심시켰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했을 땐 ‘유서라도 써 놔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도로 50m가량이 꺼지면서 토사와 컨테이너, H빔이 얽히고설켰다. 2차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남풍이를 비롯한 구조견들은 ‘태극기’가 그려진 조끼를 입고 수색에 나섰다. 장 소방위는 “쓰러진 구조물을 뚫고 구조대원들이 조금씩 길을 터주면 구조견이 냄새를 맡으며 수색 범위를 좁혀 가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구조견들은 실종자의 체취를 특정하고 찾기보다 ‘멈춰있는 냄새’를 찾도록 훈련돼 있다. 산악인명구조 현장에서 등산객과 조난자를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붕괴현장은 진입로가 비좁았던 만큼 실종자의 단서가 희미했다. 흙과 철골이 겹겹이 쌓여 실종자의 냄새가 빠져나올 틈이 없었다. 구조대원의 활동범위도 제약돼 구조견이 구조대원의 냄새를 ‘멈춰있는 냄새’로 오인할 가능성이 컸다. 이 때문에 구조대원들의 냄새가 날아갈 때까지 2시간여 기다리다가 구조견을 투입하는 등 수색시간이 길어졌다.

남풍이가 “왈, 왈” 짖으며 요구조자가 있다고 알리는 ‘통보 반응’을 보인 건 지난 15일 오후 11시쯤이었다. 남풍이를 비롯한 구조견들은 이날 오후부터 구조대원이 후보로 꼽은 3개 지점 중 가운데 위치한 컨테이너 부근에서 더 파고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한다. 지하 15m 깊이에서 구조대원이 수동절단기로 철골을 끊고 삽으로 땅을 파 길을 조금씩 내면 구조견들이 들어가 코를 댔다. 이렇게 4m가량 내려갔을 때 파도를 시작으로 구조견들이 연속으로 통보 반응을 보였고 여기서 약 2m 더 파고 들어간 결과 실종자를 찾을 수 있었다.
실종자 찾는 후각 능력 사람의 3만배

현재 각 시·도 소방재난본부에선 남풍이와 같은 인명 구조견 총 37마리가 활동 중이다. 국내에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특수재난 사고 대비 인명 구조견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구조견 양성 사업이 시작됐다. 구조견은 재난 현장에서 실종자를 찾는 일뿐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하거나 실종 치매 노인을 찾는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일하는데, 후각 능력은 사람보다 3만배 정도 뛰어나다고 한다.
5살 남풍이는 구조견으로 치면 ‘전성기’를 지나고 있다. 대개 구조견은 0~3살 때 인명 구조 훈련을 거쳐 4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치된다. 이후 장 소방위와 같은 한 명의 핸들러와 짝을 이뤄 4~5년간 일하다 은퇴한다. 장 소방위는 “출동이 없는 날이면 간이 구조물이 쌓인 곳에서 구조견이 숨은 사람을 찾았을 때 가장 좋아하는 공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훈련을 이어간다”고 했다.

장 소방위와 남풍이가 만난 건 2023년 12월. 1년 4개월간 합을 맞췄다. 이제는 손발이 척척 맞아 신안산선 붕괴 현장처럼 난도가 높은 A등급 재난 현장에도 곧잘 투입된다. 장 소방위는 남풍이가 알아들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무서웠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줘서 고맙다, 넌 진짜 멋있는 내 파트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