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코리아’로 트럼프 통상 압박 협상해야

2025-03-02

“10억 달러 이상 투자하면 심사 때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해주겠다.”

지난달 21일 한국 기업 경영자들을 만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말이다. 대미(對美) 투자를 독려하는 내용이라지만 미국 관세 퍼레이드로 밤낮 고민 중인 우리 기업들은 혼란스럽다. 이 정도 투자면 관세에서 우대하겠단 것인가, 아니면 투자는 투자고 관세는 관세란 이야기인가.

기업별 선방이 전체엔 손실 위험

민관 협력으로 대응 역량 높이되

협상과 결단은 정부가 주도해야

한국은 지난 8년간 1600억 달러 넘게 미국에 투자했다. 2023년부턴 최대 투자국이다. 지금 우리에겐 투자 자체가 아니라 투자의 조건, 그리고 투자 이후가 문제다. 여기엔 아무 이야기 없이 다시 크게 투자하라니 속내를 알 수 없다.

그럴수록 민관 협력의 중요성은 날로 강조되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트럼프식 ‘통상 총력전’을 이겨내자면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끌어모으고, 모든 카드의 조합을 맞춰 보아야 한다. 톱니바퀴 같은 민관 협력만으로 가능하다. 그간 우리가 잘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데 관세 소나기로 다급한 마음에 기업별·산업별·단체별로 여러 루트를 통해 미국 조야 접촉에 나서는 듯한 모습은 우려된다. 시시각각 바뀌는 동향과 정보 파악을 위해 온갖 촉수를 동원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한군데로 모여야 한다. 바로 정부다. 정리·선별·조율 작업을 위해서다. 그다음 우리 정부 담당자가 대답과 대안을 갖고 미국 담당자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든 우리 역량 최대치로 나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당분간 모든 협상의 목소리는 정부로 일원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자칫 기업별로 투자를 약속하고, 공장 건설을 내세우면 그 기업엔 선방일 수 있어도 우리 전체론 타격일 수도 있다.

지금 민관 협력도 이 틀에서 움직여야 한다. 작금의 화두인 ‘팀 코리아’가 민관이 각자 한번 다양한 길로 노력해보자는 것이어선 곤란하다. 민간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일은 서로 다르다. 역할 분담은 철저히 하되 마지막엔 정부의 결정이고, 결단이며 설득이다. 팀 코리아의 감독은 정부다. 주장도 정부다. 특히 지금은 그러하다.

돌이켜보면 이전에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 시 우리 정부 차원에서 약속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아마 이 약속도 지금 휘청거렸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보단 우리 입지가 좋지 않았을까. 상황이 복잡할수록 정부 차원의 최종 정리가 필요한 이유다.

그간 어려운 국내 여건에도 정부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허나 이젠 좀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앞장서 이끌어야 한다. 미국발 현안 대응을 위해 정부에선 얼마 전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만들었다. 관련 부처 장관들이 신속히 논의하기 위함이다. 발 빠른 행보다. 그러나 이런 시기에 ‘간담회’로 과연 파고를 넘을 수 있을까. 좀 더 힘 실린 조직은 만들 수 없나. 여기서 여러 조율과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미 투자도 그러하다.

보통이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기업은 기업, 정부는 정부인 까닭이다. 그러나 지금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민관 협력도 2.0시대가 왔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상호관세 준비 작업에 나섰다. 3월 11일까지 미국 기업과 단체의 의견을 수렴한다. 이를 토대로 4월 2일 관세 부과 예정이다. 20일 남짓한 시간에 이 내용을 다 소화해 국가별로 관세 부과 여부와 수준을 정하자면 번갯불에 콩을 볶는 수준의 결정이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한국에 대해서도 사실과 오해가 섞인 평가가 진행될 여지가 많다.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미국 연락을 기다릴 게 아니라 바로 준비해야 한다. 2024년 3월 USTR이 작성한 국가별 보고서에 이미 이들의 한국에 대한 불만 사항 18꼭지가 있다. 이걸 놓고서라도 우리 내부적으로 먼저 준비해 3월 중 빠른 설명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기업이 도울 순 있어도 해법은 오로지 정부만 찾을 수 있다.

시간이 문제라면 4월 2일 기한만이라도 미루는 협상이 필요하다. 일단 한 달이라도 미뤄 시간을 벌자. 2월 초 캐나다와 멕시코 전례도 있다.

“정부의 통상 대응 역량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2월 18일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발언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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