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미국서 韓 조선업 10년 먹거리 확보 가능…TF 만들어 民官硏 참여”

2025-03-03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에 조선업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당선인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며 양국의 조선업 협력 방안을 거론한 데 이어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도 이달 한국을 방문해 함정 건조 현장을 둘러볼 예정이다. 계엄·탄핵 사태로 국정 리더십 공백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우종훈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3일 “미국에서 우리 조선업의 먹거리 10년 치가 기본으로 생기고 중소형사에도 기회가 열릴 수 있다”며 “정부가 관련 부처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조선사와 학계도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지난해 국내 조선사들끼리 경쟁하다가 10조 원 규모의 호주 함정 수주를 놓친 것과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사령탑을 두고 일관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전하던 우리나라의 조선업이 살아나고 있다.

△2010년을 전후해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면서 슈퍼 해운 사이클이 있었고 그때 새 선박들이 많이 공급됐다. 공급과잉으로 해운업도 조선업도 어려워졌다. 우리 조선사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드릴십 등 해양구조물에 집중했는데 미국에서 셰일오일이 터지며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해운 업황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친환경 이슈 등장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이 열려 회생할 수 있었다. 우리 조선사들은 세계 LNG 선박 건조 시장에서 한때 90%를 차지했고 지금은 60~70%를 점유하고 있다.

-다른 제조업처럼 조선업도 중국의 추격에 직면해 있는데.

△현재 세계 발주 선박의 60~70%가량을 중국 조선사들이 수주할 정도로 볼륨 시장은 이미 중국에 넘어갔다. 자국 거대 해운사들의 발주 물량이 많은 데다 중국 정부가 금융기관들의 선수금환급보증(RG)을 거의 무제한으로 해줘 중국 조선업이 급팽창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기관이 RG를 해주지 않아 수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중국과 어느 정도의 기술 차이를 유지하고 있는가.

△전체 조선업 경쟁력은 이미 중국이 우리를 앞질렀다. 설계·기자재 분야는 우리가 약간 우세하지만 건조, 수리·부품, 사후 관리 서비스(AS) 등에서는 중국이 압도적으로 앞서 있다.

-고부가가치 선박과 친환경 선박 분야는 어떠한가.

△대형 컨테이너선이나 대형 유조선 분야도 중국에 넘어갔다고 봐야 한다. 친환경 선박인 LNG선은 아직 우리나라가 충분한 비교 우위에 있다. 다른 친환경 선박에서는 표면적으론 우리가 앞서 있지만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로 선주들은 선박의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기존 중유 선박의 50%까지 줄이고, 2050년까지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LNG 선박은 20~30%밖에 줄이지 못한다. LNG 선박에서 메탄올·암모니아·수소·바이오매스·이산화탄소 선박 등으로 넘어가는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상황이어서 IMO의 표준 결정이 매우 중요하다. 민관이 함께 표준화 경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자율운항 선박 등 미래 선박 분야는.

△우리 업체들이 오래전부터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해왔지만 선사들의 관심 1순위는 탄소 배출량 감소다. 그러다 보니 자율운항 기술을 무상 탑재해주고 거기서 얻는 데이터로 더 스마트화하는 상황에 있다. 승조원 비용의 비중이 크지 않으므로 무인화보다는 선박의 생산성·효율성 향상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함정이나 잠수함 등 방산 선박 분야는.

△방산 분야는 경제적 요소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므로 함정이나 잠수함의 수출이 많지 않았다. 꾸준히 국산화율을 높여 프랑스·이탈리아·일본 등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 지정학적인 문제로 중국과의 경쟁을 피하게 되고 우리나라보다 선박 건조 기술이 떨어지는 나라들과 경쟁하기 때문에 승산이 높다.

-자동차 산업과 비교해 조선업의 자동화 수준은.

△자동차는 대량생산하고 선박은 일품 건조여서 직접 비교하기가 어렵다. 자동차는 프레스·차체·도장·조립의 4대 공정 중 조립 공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동화했다. 조선은 중간 제품의 무게가 수십 톤에서 1000톤이 넘어가다 보니 자동화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대부분 사람이 한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인건비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다. 조선업은 역사적 흐름을 보면 10년 전에 중국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는데 산학연정 협력으로 친환경 등의 기술력을 높여 잘 버티고 있다.

-조선업의 인력 조달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외국인 근로자들이 전체의 30%가량을 차지한다. 초보자 10명보다 고(高)기능공 1명이 더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숙련이 될 때쯤 본국으로 돌아간다. 숙련공만이라도 가족들을 데려와 살 수 있게 정주 여건 개선이 절실하다. 회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자동차 업종 수준의 임금을 주자니 조선소가 버틸 수 없고 사람을 줄이기 위해 자동화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가고 있는데 이것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유능한 근로자에게 돈을 더 주려고 하면 강성 노조에서 못 하게 한다. 조선업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정말로 절실하다.

-미국이 조선업 협력을 요청하며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2년 전 대만해협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하던 미군 구축함을 향해 중국 구축함이 가로지르며 아찔하게 대치했던 적이 있다. 미국이 중국 함정의 규모에 놀라 자체 조사를 해보니 미국의 함정이나 상선 건조 능력이 중국의 20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제정된 ‘존스법’으로 미국의 조선 경쟁력이 거의 상실됐다. 미국 내 운항 선박은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인이 소유하고 미국인 선원을 두도록 규제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원하지 않으면 미국은 수년 내에 중국에 비해 절대 열위에 놓일 수 있다.

-미국의 조선 시장을 전망한다면.

△미 해군은 향후 10년 동안 364척의 신규 군함을 투입하기 위해 총 1600조 원가량을 지출할 방침이다. 10년 안에 미국 상선을 250척 추가로 늘리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물자를 수송할 운반선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유지·보수(MRO) 시장, 미국 조선소 업그레이드, 조선 인력 교육 시장도 열리고 있다.

-정부가 한미 조선업 협력 방안을 제대로 마련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업은 우리가 절대 우위를 가지고 미국과 협상할 수 있는 분야인데 밀려나 있다. 대형 상선을 수주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과 일본밖에 없는데 일본의 경쟁력은 한국에 뒤진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가 관련 TF부터 조속히 만들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여기에 조선업체뿐 아니라 학계·연구계도 참여할 필요가 있다.

-한미 조선업 협력을 어떻게 진행할 수 있는가.

△미국에 새로운 조선소를 짓거나 기존 조선소를 혁신할 수 있다. 함정 선체는 한국에서 만들고 무기는 미국에서 탑재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이 안심하고 발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민간의 의견을 모아서 추진해가야 한다. 존스법 완화 법안이 미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혜택을 제시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나서서 일관되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호주 함정 수주 실패 때 어떤 문제가 있었나.

△이탈리아와 일본 등은 국가에서 정리해 하나의 업체가 대표로 참여했는데 우리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함께 들어갔다. 가격이 이탈리아·일본의 반값 정도로 낮아 가장 경쟁력이 있었는데도 이탈리아 업체에 넘어갔다. 앞으로 캐나다 잠수함 건조 사업 등 훨씬 더 큰 프로젝트가 많은데 단일 팀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면 정부의 중재가 매우 중요하다.

-조선 협력을 내세워 한국에 대한 미국의 관세 부과에 협조를 구할 여지는 있는가.

△조선 협력을 대가로 우리나라의 핵 보유 인정을 받아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조선업과 다른 산업 지원 사이에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

-조선업이 경쟁력을 제고하고 시장을 선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 연구개발(R&D)이 효율적으로 집행돼야 한다. 2020년에 산업부와 해수부가 1단계 사업 2026년 종료를 목표로 1000억여 원 규모의 자율운항 선박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그런데 예비타당성 조사에 2~3년 묶이다 보니 대형 조선 3사가 먼저 자율운항 선박을 상용화하기도 했다. 스마트 야드 분야는 비효율이 더하다. 과제를 기획하고 사업을 만드는 부처와 산하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등의 전문성 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RG의 경우 해운 경기 회복 국면에는 금융기관이 과감히 지원하고 후퇴 국면에는 거품 투자를 하지 않게 자제하도록 정부가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He is…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조선해양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양 엔지니어링 회사 지노스, 3D 가상 생산 솔루션 회사인 다쏘시스템, 삼성SDS 혁신 분야 등에서 일했다. 이후 한국해양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부를 거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 인공지능 스마트오션모빌리티센터장도 맡고 있다. 미국조선학회의 설계 생산 분야 최고 논문상인 ‘엘머 한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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