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리듬 자극하는 봄철 우울감 심화 현상
우울증, 조기 진단·재발 방지 치료가 핵심

40대 김모씨는 요즘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우울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외부 활동이 늘었지만, 본인만 세상과 따로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김씨는 “봄이 오면 활기차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공허함이나 허무감이 밀려온다”며 “계절을 타는 건지, 취미생활도 재미가 없고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일반적으로 겨울이 가장 우울한 계절로 여겨지고, 의학계도 일조량이 적을 수록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통계적으론 봄철 자살률이 겨울보다 더 높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살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월별 자살 사망자 수는 봄(3~5월)이 겨울(12~2월)보다 20%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우울증 환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전문가들은 봄철 등에 주로 발생하는 계절성 우울증에 대해서도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17일 경희대병원에 따르면, 봄철 우울증 환자가 늘고 자살률이 증가하는 현상을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고 부른다. ‘봄(Spring)’과 ‘정서적 고조(Peak)’를 뜻하는 단어가 결합된 용어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감정 기복이 커지며 우울감이 심화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시기에는 일조량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기분과 수면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의 균형이 깨지기 쉽다. 이때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우울감이 악화될 수 있다.
이아라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계절성 우울장애는 특정 시기에 우울감이 몰려왔다가 자연 호전되기도 하지만, 증상이 반복되거나 오래 지속된다면 만성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며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는 햇볕을 자주 쬐고, 적절한 운동을 통해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봄철 우울증은 겨울철 우울증과 양상이 다르다. 겨울엔 잠이 많아지고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두드러지는 반면, 봄에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매사에 흥미를 잃고 피로감이 지속되거나, 하루 종일 우울감에 시달려 집중력과 기억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수면 장애가 동반돼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 또 지나친 죄책감 등 부정적 사고나 자살 충동까지 나타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봄철 황사와 미세먼지, 꽃가루도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초미세먼지에 많이 노출될수록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증가한다. 꽃가루는 염증 반응을 활성화해 사이토카인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물질은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억제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또 봄에는 입학, 졸업, 취업, 인사이동 같은 삶의 변화가 많아지는 시기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좋은 소식들이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울감이 심화될 수 있다.
우울증은 조기 진단과 재발 방지 치료가 핵심이다. 증상이 의심되면 망설이지 말고 병원을 찾아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 인지행동 치료 등을 받아야 한다. 급성기에는 약물 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다. 만약 증상이 나아졌다고 자의적으로 약물을 중단할 경우 재발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 교수는 “우울증은 재발할수록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어 무엇보다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을 신뢰하고 치료 계획을 성실히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우울증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치료 후에는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질환이라고 믿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우울증 극복을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는 평범한 일상 속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표현하는 것도 회복에 도움이 된다. 일기를 쓰거나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다.
이때 주변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과 대화할 땐 문제 해결보단 판단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따뜻한 관심과 지지는 우울감 해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 우울증 선별 도구
- 총점 27점(문항당 0~3점 / 2∼3일 이상 1점 · 7일 이상 2점 · 거의 매일 3점)
- 1~4점 ‘우울증 아님’ · 5~9점 ‘가벼운 우울증’ · 10점~19점 ‘중간 정도 우울증’ · 20점~27점 ‘심한 우울증’
Q. 지난 2주 동안 아래 나열되는 증상들에 얼마나 자주 시달렸습니까?
지난 2주간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한 날을 헤아려 점수를 매겨보세요.
1. 일을 하는 것에 대한 흥미나 재미가 거의 없음
2. 가라앉은 느낌, 우울감 혹은 절망감
3. 잠들기 어렵거나 자꾸 깨어남, 혹은 너무 많이 잠
4. 피곤함, 기력이 저하됨
5. 식욕 저하 혹은 과식
6. 나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느낌 혹은 내 자신을 실패자라고 느끼거나 나 때문에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이 불행하게 되었다는 느낌
7. 신문을 읽거나 TV를 볼 때 집중하기 어려움
8. 남들이 알아챌 정도로 거동이나 말이 느림, 또는 반대로 너무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해서 평소보다 많이 돌아다니고 서성거림
9. 나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등의 생각 혹은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를 자해하는 생각들
(출처: 보건복지부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