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도 날린 ‘일심회’ 실체…前대공수사단장 첫 육성 증언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4부-①]

2025-03-19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제4부〉스파이 잡기 30년, 하동환 전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의 비망록

1화. 국정원장 날린 일심회 사건 전말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4부〉를 시작하며

한반도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지역이다.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체결됐지만 총성이 멈췄을 뿐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남북 이념 전쟁이 그 총성을 대신하며 7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더중앙플러스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취재팀은 지난해 1월부터 이 전쟁의 최전선에서 뛰어들어 치열한 삶을 헤쳐온 남북 스파이들을 만났다.

스파이 혹은 간첩이라고 불리는 남북 대결의 대리인을 만들어낸 것은 이념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누군가는 간첩 이야기를 들으면 ‘빨갱이 타령’이라며 낡은 이념의 유산이라고 치부한다. 취재팀은 그런 질문을 던지며 스파이의 실체에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다.

1부 ‘남파간첩 김동식’, 2부 ‘대북공작원 정규필’, 3부 ‘정보사령부 블랙요원 정구왕’에 이어 ‘스파이를 잡는 사람’을 주제로 잡고 4부를 시작한다. 스파이를 잡는다는 건 절도범과 같은 일반 형사사범을 쫓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스파이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호하는 여러 겹의 최첨단 위장막 속에서 은밀히 움직인다. 그들을 잡기 위해 때로는 수년을 추적해야 한다. 끝없는 감시와 미행, 잠복은 필수다. 몇 달씩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길바닥도 헤매야 한다. 현지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가기도 한다.

국가정보원(국정원)에서는 국내에서 암약하는 간첩 또는 스파이를 잡는 부서를 대공(對共)수사국이라 불렀다. 대공은 반공산주의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방첩(防諜)이라고도 불렸다. 영미권에서는 유사한 업무를 카운터 인텔리전스(Counter-intellingence)라고, 프랑스어권에서는 콩트르 에스피오나즈(Contre-espionnage)라고 부른다. 취재팀은 국정원 대공수사국에서 1992년부터 2022년까지 30년 동안 간첩 잡는 일만 맡다 3년 전 퇴직한 베테랑 수사관을 접촉했다.

그의 이름은 하동환(58). 그는 일심회‧왕재산‧혁명조직(RO) 등 한국 현대사에 남을 만한 굵직한 대공 사건 수사에 직접 참여했다. 최근 법원에서 진행 중인 창원‧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의 수사 책임자이기도 했다. 하동환의 발자취는 한국 대공 수사의 변천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다.

더중앙플러스에 하동환의 입을 통해 국정원이 지난 30년 동안 쌓아 온 간첩 수사 노하우가 세상에 소개된다. 그와 지난해 9월부터 수차례 만나 기밀 유출에 대한 우려가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를 취재하면서 30년이 지난 사건이라도 정보기관에서 공작 기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하동환은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완전히 폐지된 상황에서 과거 간첩사건 보안 유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2024년 1월부터 대공수사권은 국정원에서 경찰로 넘어갔다. 국정원의 수사국 인력은 ‘조사국’으로 이름이 바뀐 부서로 이동했다. 부서는 간첩사건의 단서를 수집만 하는 역할로 쪼그라들었다. 예전처럼 간첩 혐의가 보이는 사람을 추적해 북한과 교신하는 통화나 e메일을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내사 활동은 법으로 금지됐다. 경찰 수사를 보조하는 업무에 그친다.

하동환은 “밤을 새워서 국가 안보를 위해 헌신했던 수사국 직원들의 땀방울을 생생하게 드러내 국민에게 간첩 수사의 고충과 관심을 호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 안보를 지키는 방어 체계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취재팀은 그와 6개월 이상 대화와 만남을 이어가며 인터뷰했으며, 간첩사건이 벌어지는 재판 현장에도 동행했다.

하동환은 개인적인 무용담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신념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국가 정보와 안보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데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랐다.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대한민국 첩보전의 최일선에서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은 베일에 가려져 왔던 남북 스파이 대리전의 실체와 양상을 목격할 것이다.

🔎하동환 파일

출생 : 1967년 경남 마산

학력 : 부산대 영문학과

경력 : 국가정보원 1992년 입사 뒤 대공수사국 수사과장(4급)‧처장(3급)‧단장(2급)을 거쳐 2022년 대구지부장(1급)으로 퇴직

주요 수사 사건 : 일심회, 왕재산, 범민련, 지하혁명조직(RO), 청주‧민주노총‧창원 간첩단 등

지난 11일 수원시 영통구 수원고등법원 704호. 반듯한 머리에 회색 양복을 입고 나온 석모(54)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북한으로부터 지령문을 받고 노동단체와 군 시설 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이력은 거물급 간첩이었지만 겉모습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와 다를 바 없었다.

이날 열린 항소심에서는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 간부가 증인으로 나왔다. 피고인 측 변호사가 북한 지령문을 보여주자 “이해가 되지 않는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내용이다”고 반박했다. “석씨와는 일면식도 없고, 다른 피고인들과도 동네 산행을 같이한 정도일 뿐”이라고도 주장했다. 이에 검찰 측은 증인이 과거 전남 빨치산(항일 유격대)을 추모하는 행사에 같이 참석한 사진을 보여주며 북한과의 관계를 추궁했다. 변호사들은 서로 태블릿 PC를 보여주며 분주히 대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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