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줍던 그의 법안, 'S'자 붙는다...한국계 첫 상원의원, 대선 꿈 가시화할까

2024-11-06

한국이 6ㆍ25의 참화에서 아직 신음하던 시절, 서울역에서 동냥을 하던 소년이 있었다. 소아마비까지 앓으며 삶의 무게를 짊어진 이 소년은 불굴의 의지로 국비 유학생 기회를 잡는다.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나온 그는 유전공학 박사로 자수성가한다. 그렇게 '닥터 진 김(Jin Kim)'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간호사인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워싱턴DC로 여행을 떠난다. 캐피톨 힐, 즉 의사당에 아들 앤드류를 데리고 들어간 그는 이렇게 속삭인다. "여긴 민주주의의 성지(聖地)란다. 너에게 모든 가능성을 준 나라인 미국을 사랑해라."

그 소년이 5일(현지시간), 의사당에 한국계로는 최초 상원의원으로 입성했다. 하원의원으로서는 3선을 했지만 상원에 입성한 건 정치 신분 업그레이드다. 정치인 여정에서 핵심 이정표를 세우는 데 큰 산을 넘었다는 의미가 있다. 앞으로 그가 발의하는 법안엔 'S'자가 붙는다. 상원의원(Senator)를 상징하는 글자다. 한국계 상원의원이라는 점에서 한·미 관계에도 우군이 될 전망이다. 이날 백악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앤디 김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6년 임기의 성과에 따라 대권 주자 반열에 들 가능성도 열렸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후보 모두 상원에서 두각을 드러내 백악관 행 티켓을 거머쥔 케이스다. 김 의원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상원에 입성했던 나이보다 현재 한 살 아래다.

그의 당선은 일찌감치 확정됐다. 개표가 28% 진행됐을 시점인 한국 시각 6일 10시 30분 경, AP등 외신은 그의 승리를 보도했다. 앤디 김 의원은 이 시점에서 58%를 득표했고, 적수인 공화당 커티스 바쇼 후보는 41%에 그쳤다.

앤디 김 의원의 지역 주(州)인 뉴저지는 미국 민주당이 내리 승리한 텃밭이다. 상원의원으로 가는 길에서 앤디 김이 통과해야 했던 가장 큰 관문이 당내 경선이었던 까닭이다. 김 의원의 상원 도전은 일각에선 이르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의 나이(42세)와 소수인종이라는 점도 있지만 당내 입지와 조직력 및 자금력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김 의원은 특유의 불굴의 의지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의 경선 출마 일성은 당내 기득권 개혁.

출마 선언부터 담대한 선택을 했다. 당내에서 출마 선언은 지도부에 먼저 지지를 구하고 암묵적 동의를 받은 뒤 요식행위에 그치는 게 관행이다. 그러나 앤디 김 의원은 지도부를 찾아가지 않았다.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 경선 투표 용지도 바꾸자고 제안했다. 기존엔 지도부가 미는 후보를 제일 위에 올리고, 그렇지 않은 후보는 '시베리아(춥고 외면받는 지역이라는 의미)'라 불린 구석에 배치했다. 그러나 앤디 김 후보 측은 이에 문제를 제기했고, 지도부가 꿈쩍 않자 소송까지 제기했다. 결과는 그의 승소. 지도부 입장에선 괘씸죄다. 당 안팎에선 "지도부가 (뉴저지 주지사 필 머피의 부인) 태미 머피 후보를 민다"는 얘기가 공공연했다.

당원들의 선택은 그러나 앤디 김 후보였다. 마침 뉴저지에서 약 18년을 상원의원으로 군림한 밥 메넨데스 의원이 부패 사건에 연루돼 당적을 잃은 참이었다. 기존 중량급 의원이 부패 사건에 연루되면서 당내 혁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앤디 김 의원은 이 바람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올라탄 것이다. 김 의원은 출마 일성으로 "지금의 정치는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실망만을 안겨주고 있다"며 "새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태미 머피 후보는 결국 '남편 찬스'라는 비판 속에서 사퇴했다. 앤디 김은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 지난 6월 예비선거에서 그가 가져간 득표율은 81%.

앤디 김 의원은 혁신만 외치지 않았다. 포용의 가치도 보여줬다. 밥 메넨데스의 아들, 롭 메넨데스 하원의원에게 화해의 손길을 청하면서다. 지난 9월, 롭 메넨데스 하원의원은 앤디 김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둘이 함께 뉴저지의 카페에서 유권자들을 만나는 사진은 폴리티코 등 유력 매체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됐다. 자칫 적군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자기 편으로 만든 묘수였다. 경쟁 후보를 배려하는 모습도 화제였다. 공화당 바쇼 후보와 토론을 하던 중, 바쇼 후보가 갑자기 말을 못하면서 비틀거리자 "괜찮냐"며 부축하면서다. 정치인의 품격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의 됨됨이는 사실 2021년부터 조명을 받았다. 1월 6일 의회 폭동 사건이 났을 당시, 아수라장이 된 의사당을 묵묵히 청소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다. 그는 당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의사당에 떨어진 쓰레기를 봉투에 담았다. 그는 당시 상황을 돌아보며 카멀라 해리스 후보 유세 찬조연설에서 "이렇게 혼란스러운 미국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울 수는 없다"며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있다, 해리스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앤디 김이 처음부터 정치 입성을 꿈꾼 건 아니다. 그는 외교ㆍ안보 전문가였다. 뉴저지에서 성장하며 공립학교를 다닌 그는 시카고대를 졸업했고, 이후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9년 이라크 전문가로 국무부에 입부, 2011년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근무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 사령관 전략 참모로 현장 경험을 쌓은 것. 이후 2013~2015년엔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핵심 요직인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역임하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는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곤 하는 일이 있었다"며 "이런 경험들이 정치에 눈을 뜨게 했다"고 이후 정계 입문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그는 2018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정계 출사표를 던졌다. 하원의원으로서다. 당시 공화당 현역의원이었던 톰 맥아더에 신승을 거뒀다. 뉴저지는 백인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뉴저지는 그에게 녹록하지 않아 보였으나 그는 "내가 나고 자란 뉴저지, 내가 내 아들 둘을 낳고 키우는 뉴저지에서 봉사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슬로건으로 당선했다. 이후 3선 고지에 올랐다.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그는 두 아들을 의사당에 종종 데리고 간다고 했다. 옥스퍼드 시절 만난 캠미 라이 세무사와 결혼했다. 그는 여러 연설에서 "나와 내 가족은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며 "그런데 지금 미국의 혼돈과 혼란, 극단주의는 우리의 아이들은 그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지 못하는 게 아닐까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고, 그렇기에 우리 모두를 위해 정치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앤디 김 의원의 정치 행적엔 품격과 포용이 있기에 미국을 넘어 울림을 준다. 그가 "나에게 투표했든 안 했든, 모든 유권자는 나의 보스"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

그의 정치 역정은 신 기록의 연속이다. 하원의원으로 당선됐을 땐 "뉴저지 첫 아시아계 의원"이 됐고, 상원의원이 된 지금은 "한국계 미국인 첫 상원의원"이다. 앞으로 행보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그는 아직 42세다.

한편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이번 상·하원 선거에선 앤디 김 외에도 한국계 정치인 3인이 도전장을 냈다. 영 김(공화·캘리포니아 40선거구), 미셸 박 스틸(공화·캘리포니아), 매릴린 스트리클런드(민주·워싱턴주 10선거구) 등 3명이 하원의원 재선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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