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사용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표현을 빌리면 4월은 봄이 와도 한참 지났다. 들에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가 3월에 피고 4월에는 벚꽃까지 피고 있는 상태에서 4월 중순경 118년 만에 서울에 눈이 오고 제주에는 강풍이 불어 한창인 벚꽃이 다 떨어지고 다시 겨울옷을 꺼내 입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아직 봄이 오기에는 온전치가 않음을 의미한다면 김종필 정치인은 은유적 표현으로 서울의 봄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는 봄이 오지 않았다는 걸 내포했다.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탄핵의 정국은 끝나고 계엄의 분위기는 사라졌으나 아직도 확실한 봄이 오려면 멀었나 보다. 사계절 가운데 만물이 태동하는 봄을 두고 4월을 잔인한 달로 표현한 영국의 시인인 T S엘리엇이 있다. 황무지 라는 시에서 비롯 되었는데
황 무 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이 시는 전체가 433행이 되는 긴 시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시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과거의 토대 위에 다시 희망을 키워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시대적 배경을 보면 그때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하며, 참혹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에 없던 기아와 혼란속에 전혀 인류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또 작가 역시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짐에서 공허한 마음으로 지은 시라고 한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잔인한 달로 표현했을진대 작가의 의도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4월에 사건사고가 많았던 것으로 이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4월의 역사적 사실을 얘기해보면 첫째 제주 4.3사건이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조선로동당의 지휘를 받은 빨치산 조직의 진압과정에서 제주도 도민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하는데, 민간인 희생자 수가 1만 4천여 명 이었다고 한다. 경찰과 군의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의 피해가 있었다.
두 번째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확증이 불가능한 원인으로 침몰하면서 승객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된 대한민국 해상사고이다. 특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하였으나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사망하였고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국민들의 사회적 충격이 엄청나게 컸던 사건이었다.
세 번째는 1960년 4월 19일 대한민국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저항해 시민들이 저항권을 들고 일어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끝낸 민주주의 시민 혁명이다. 국제적으로 아시아에서 드물게 성공한 민주혁명으로 2.28 학생 민주의거와 3.15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4.19혁명의 서막으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시민들이 항거하여 대대적으로 일어난 시위로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사건사고들이 4월에 몰려 있다 보니 4월은 잔인한 달로 비유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다른 이유를 들자면 겨우내 땅속에 있던 새싹들이 움을 틔우기 위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게 대부분 4월이다. 캄캄하고 단단한 흙을 뚫고 나와 4월의 변화무쌍한 자연계에서 추위와 햇볕을 견뎌야 하는 시련이 있는 달이기 때문일 수 있다.
이밖에 금년 3, 4월로 이어지는 영남지역 산불로 인해 청도군 산불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인 산불이 발생해 48,000ha 이상 광범위한 임야가 전소되고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과 사망, 이재민이 발생했다. 대단히 슬프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건조한 날씨 때문이라고는 하나 방화로 인한 사고도 있었음을 파악했다. 계절의 변화 가운데 봄이 오기에는 시련의 토대가 있나보다. 아무튼 산불로 삶의 터를 잃어버린 이재민들의 재활이 속히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우리 치과계는 이러한 재난으로 힘들어 하는 이재민과 유족들에게 조그만 희망이 되고자 환자 진료사업인 틀니 제작에 열정을 보이고 있고 치의들은 자발적으로 성금 모금을 통한 돕기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4월 11일~13일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도 성공리에 치르고 다가오는 5월 시덱스 행사도 치과의사들의 저력을 보여주고 약자 및 불우이웃과 함께 한다는 슬로건으로 성공적인 5월 행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기후적으로 늘 잔인하였던 4월이었지만 다가오는 5월은 계절의 여왕답게 포근한 이미지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든 대한민국 그리고 치과계에 밝은 날이 계속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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