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로 전환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발전으로 글로벌 전기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도 급속히 커지고 있다. 탄소 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AEA)는 2023년 기준 2만9863TWh(테라와트시) 수준이었던 전 세계 전력생산이 2050년 5만8352TWh로 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중 재생에너지 전력이 전체의 73.3%를 차지할 전망이다.
2024년 우리나라의 전체 에너지 수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0.6%였다. 올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1.8%로 높일 계획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설치가 쉬운 태양광 중심으로 재생에너지가 보급됐다. 그러나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며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태양광을 설치할 만한 입지도 고갈되고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해상풍력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에 태양광 한계
목표 달성 위해 해상풍력 키워야
대만처럼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이해 관계자 수용성 확보 필요
인허가 및 관련 규제 완화로
민간·해외 자본 투자 유도해야

해상풍력 보급과 관련한 정치적 의지도 확고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에너지 전환을 기반으로 한 산업 업그레이드’ 공약을 통해 재생에너지, 특히 해상풍력 개발 의지를 표명했다. 구체적으로 ‘인천-서남해-남해안-경북 동해안’을 잇는 해상풍력 벨트를 조성해 첨단산업의 RE100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30년 해상풍력 보급 목표를 약 14.3기가와트(GW)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 10기의 발전 용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의 해상풍력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올해 한국의 해상풍력 설비용량은 323메가와트(㎿ 0.3GW)에 불과하다. 영국(15.6GW)과 독일(9.0GW), 네덜란드(5.4GW), 대만(3.0GW), 덴마크(2.7GW)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다. 중국의 해상풍력 설비 용량은 올해 42.9GW로 한국의 140배 이상이다.
해상풍력 운전까지 10년4개월 걸려

삼면이 바다인데다 정부의 확고한 의지까지 실리면서 국내 해상풍력 개발 사업에 대한 유럽계 기업 등 외국 자본의 관심도 커지며 여러 곳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부딪치는 각종 어려움이다. 외국 기업의 투자 애로사항 해소를 지원하는 외국인투자 옴부즈만에는 해상풍력 사업과 관련해 복잡한 인·허가, 전력계통 포화, 주민 수용성 부족 등 현장에서 겪는 각종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해상풍력 개발에서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전력계통 확충 문제다. 전력계통 포화로 발전사업 허가가 불허되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3월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제정해, 345킬로볼트(KV) 이상 송전 설비에 대해 입지 선정 등에서 신속 절차를 도입하고 주민 수용성 확보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전력계통 연계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요처로 나르는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및 U자형 ‘한반도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력망의 신속한 확충이 해상풍력 개발 목표의 달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열쇠라 할 수 있다.
해상풍력 개발의 또 다른 걸림돌은 복잡다단한 인·허가 절차와 그와 관련된 각종 규제다. 전력거래소가 현재 추진 중인 전국 해상풍력 발전 사업(43건)을 분석한 결과 사업 허가 후 착공까지 평균 소요기간은 6년6개월이었다. 허가 전 풍력자원 계측과 착공 후 준공까지 소요시간을 따지면 사업 시작 후 10년4개월이 지나야 운전이 가능했다.
특별법 통과로 사업에 속도 붙을 듯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지난 2월 국회에서 통과된 ‘해상풍력특별법’은 정부가 풍력 입지 발굴 및 선정을 주도하도록 하고, 민·관 협의회를 통한 주민 수용성 확보, 인·허가 절차 통합, 전력계통 연계 사전 확인, 환경영향평가와 해역이용평가 통합 등을 통해 규제 개선을 꾀하고 있다. 해당 법이 내년 3월 시행되면 해상풍력 사업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좀 더 신속한 사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투자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업과 해외 투자자의 발목을 잡는 규제는 여전히 많다. 그중 하나가 군 작전 구역과의 중첩 문제다. 해상풍력 개발 단지가 해군 작전 항로나 해상 사격 시험 구역에 걸쳐 있는 경우 국방부는 해상풍력 구조물 건설에 부동의하거나 발전기 위치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국방부 동의가 없으면 사업자는 사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경해 재추진하거나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첫 부유식 해상풍력인 울산 앞바다의 반딧불이 해상풍력 사업을 비롯 서해안에서 개발 중인 다수의 해상풍력 단지가 군 작전 구역과의 중첩 문제로 사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총 발전 용량 6.6GW 규모로 2030년 해상풍력 발전 용량 개발 목표(14.3GW)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서해안 일대 개발 사업이 좌초되면 해상풍력 개발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국가안보상 군사작전 지역 보호가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해상풍력 개발의 필요성도 커지는 만큼 해상의 군사적 이용과 에너지 개발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의 상생 가이드라인도 필요

주민 수용성 확보도 해상풍력 사업의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다. 바다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해상풍력 사업의 특성상,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는 어민 등이 수용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찾아내는 것은 해상풍력 개발 사업의 중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사업자 단독으로 이해 관계자의 수용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대만처럼 중앙 정부가 상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이해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외국 자본 투자 유치를 위해 필요하다.
발전 설비 설치·유지·운용 관련 규제 개선 목소리도 이어진다. 해양 지반 지질 조사와 관련해 ‘해양과학조사법’에서는 외국인에게 내수에서의 해양 조사를 허용하지 않는다. 또 해상풍력특별법에서는 계획 입지의 지반 지질 조사를 정부가 주도하는 것으로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해상풍력 개발 사업의 경우 국제 프로젝트 금융 및 투자를 유치하려면 발전 설비의 장기 운용 안정성을 확보하는 최적화한 설계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업자는 고정밀 내지 고해상도 해양 조사를 수행한 경험과 장비·기술·인력을 보유한 외국 조사업체에 해양조사를 맡기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외국의 전문 조사업체가 내수나 영해에서 해상풍력 설치에 필요한 해양조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특례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해양과학조사법은 해저광물자원 개발사업과 관련한 조사 또는 탐사에 대해서만 특례를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관련해 해상풍력특별법은 민간 사업자가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추진하면서 취득한 해양 탐사·조사 자료의 소유권은 국가에 귀속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지만 기업과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선 이와 관련한 내용을 공정하고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해상풍력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해상풍력 설치 및 운용 선박에 대한 제한도 풀어줘야 한다. 현재 선박법은 ‘한국 선박’만이 불개항장(不開港場·외국과의 통상이나 교통이 허락되지 않은 항구나 해상)에 기항하거나 국내 항구 간 여객 또는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고 규정해 사실상 외국 국적의 해상풍력 전용 선박의 투입을 금지하고 있다. 해운법상 ‘내항 화물 운송업’ 등에 대한 외국인 투자도 제한되고 있다.
해상 풍력 설치 선박 제한 풀어야
해상풍력 발전 설비를 건설·운용하려면 해상풍력터빈 설치선과 해저케이블 설치선, 해상풍력 유지·보수 지원선 등 해상풍력 전용 선박이 필요하다. 문제는 해상풍력 산업이 성숙하지 않은 탓에 국내에서 당장 해상풍력 발전 설비를 설치할 운용 선박을 구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전용 선박이 없거나 대규모 사업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사업자나 선박의 국적을 불문하고 해상풍력 사업자가 국내에서 설치 운용 선박을 용선 또는 운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해상풍력을 보급하려면 민간 사업자가 마음 놓고 투자하고 안정적으로 해상풍력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계획만을 발표한 채 일선 현장에서 여기서 걸리고 저기서 발목이 잡혀 사업이 좌초한다면 민간 및 해외 투자자는 떠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전력 공급 계획 자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막으려면 전력망 확충과 함께 사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 개선이 급선무다. 해상풍력 관련 인·허가권을 가진 여러 기관이 해상풍력의 신속한 보급을 공동 목표로 삼고 과감히 규제를 혁파해 나가야 한다.
김두식 외국인투자 옴부즈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