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비집고>는 2022년 시작한 EBS 프로그램으로, 장애 청년들이 자신들의 삶을 공유하고 장애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한다. 유튜브 채널 소개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없었던 장애인 프로그램의 새로운 컨텐츠! 유쾌! 상쾌! 재기발랄한 토크쇼가 시작된다! 세상을 비집고 추울~발!!!대한민국 장애인 수 263만 명. 장애인 10명 중, 9명은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언젠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는 장애. 이제 세상을 비집고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유쾌한 여정이 시작된다!!!” 정인은 시각장애인 예술가이고, 나윤은 한쪽 팔을 절단한 보디빌더이다. 뇌병변장애를 가진 홍윤은 독일 유학파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현진은 인공와우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일명 ‘세비고 F4’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들은 ‘장애 경력’으로 실제 나이와는 다른 서열이 있다고 유머러스하게 언급하기도 하고, 장애를 입은 후에도 삶이 단절되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조건의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나윤은 정인을 보조하면서 시각장애인에게 적절하게 안내 보행하는 법을 배우고, 현진은 홍윤의 휠체어를 밀어준다. 현진이 대화 내용을 잘 따라가지 못하면 다시 설명하고, 물건을 옮길 때는 나윤을 배려한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동시에 갈등하거나 투닥거리기도 하며 시즌 1, 2를 이어갔다. 2025년 2월 28일에는 시즌 3 <세상을 비집고-해외원정대>(이하 ‘세비고’)가 방영을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20분에 EBS 1TV에서 10주간 방영되는 해외원정대 편은 세비고 멤버들이 스페인으로 떠나는 여행기다. 이번 편에서는 나윤이 세계 피트니스 대회 참가 일정 때문에 빠지고, 마술사 이준민이 새로 합류했다. 무릎 아래로 양다리 의족을 착용하고 있는 이준민은 후천적 장애인으로, “로봇다리 마술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여행하는 장애인, 자유롭게 활보하는 ‘다른 몸’의 존재는 한국의 미디어 환경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보기 어렵다. 여행 예능이나 관찰 예능이 그렇게나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늙거나 병든 몸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재미와 자유는 젊고 건강한 몸에만 허용되는 것 같다. 세비고는 여행 경험이 적은 멤버들을 동정하거나,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과도하게 감동적으로 연출—그래서 이들에게 여행의 기회를 준 방송국이 시혜적 위치를 점하는—하지도 않는다. 여행 첫날, 보행에 제한이 있는 멤버들은 좁은 길을 걸으며 헤맨다. “우리 발맞추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우리가 이때 초반이라 어떻게 보행하는지도, 누가 누구를 잡아야 하는지도 몰랐어.”라고 말하며 서로 의지하고 또 가장 적절한 형태로 함께 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세비고는 장애가 어떤 도전이나 경험을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특징이며 그것이 우열의 차원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여행 중에 세비고 멤버들은 유튜버 체코제를 우연히 만나 함께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가는데, 언뜻 생각하기에 춤과 노래 공연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는 즐길 수 없는 콘텐츠 같다. 그러나 정인과 현진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즐긴다. 정인은 “눈, 코, 입,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영혼을 울리는…열정, 슬픔, 자유, 행복 같은 것들이 느껴져서 소름이 끼쳤다.”라고 말한다. 정인이 공연의 온도, 습도, 밀도, 향기를 언급할 때 처음에는 이상한 소리라고 생각해서 웃던 세비고 멤버들도 생각해보니 그렇다며 격하게 동의를 표한다. 시각적 측면 외에 공연을 이루는 여러 요소를 풍부하게 느끼는 정인의 감상은 시각적 감상보다 부족하지 않다. 현진 또한 “무대 위에서 박자에 맞춰서 울리는 진동이나 비트”를 느끼며 공연의 감동을 만끽한다.

이들이 ‘세상을 비집고’ 나온다는 말은 결국 세상이 그들에게 닫혀 있어서, 비집고 나와야만 한다는 뜻이다. 닫힌 세상은 차별과 편견 같은 인식의 차원과 장애인을 세상에 나오지 못 하게 하는 물리적인 문제를 포함한다. 2025년 4월 18일, 탈시설 운동가들이 혜화동 성당 종탑에서 고공 농성 투쟁을 시작했다. 활동가들이 지붕도 화장실도 없는 곳으로 올라간 이유는 천주교가 2021년 발표된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을 포함하여 지속적으로 탈시설 권리를 왜곡한 것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탈시설 권리 왜곡이란, 시설 거주도 장애인의 주거 선택권이라고 주장하며 장애인의 자립 가능성을 부정하는 행위를 통칭한다. 장애인의 시설 거주를 당연시하는 관념은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이러한 격리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몸이 공존할 수 있는 인프라와 경험의 기회를 박탈하여 ‘장애인은 시설에 있어야 한다’라는 편견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탈시설 운동은 시설에서 발생하는 학대와 폭력 같은 인권침해의 문제가 보호라는 명목으로 묵인되거나 은폐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장애인의 자립이 가능한 지역사회의 변화를 촉구한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시설 거주 또한 장애인의 주거 선택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자립지원법은 시설 거주가 자립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는데, 이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을 천주교에서 조직적으로 주도한 것이 밝혀졌다. 이에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명동성당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천주교는 시설 거주가 장애인의 거주권 우리나라의 장애인 거주 시설의 약 10%를 운영하고 있으며, 천주교 측의 지속적인 탈시설 권리 왜곡은 이러한 이권 문제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혜화동 성당의 고공 농성은 이러한 맥락의 연장이다.
<어른이 되면>(2018)은 영화감독이자 싱어송라이터, 정치인인 장혜영 감독이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 장혜정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유튜브 채널 <생각많은 둘째언니>에서도 자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장혜정은 중증발달장애로 인해 13살 때 가족을 떠나 18년간 시골의 산꼭대기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 살았다. 너무나 당연하게 장애인을 격리하고, 자립의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는 장애인에게 시설 아니면 가족의 전담이라는 선택지만 남겨 놓는다. 또한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될 가능성을 은폐한다. 어느 날 갑자기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었을 때, 그 이전의 삶을 모두 포기하고 시설에 갇혀야 한다면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혜영은 늘 과잉행동을 이유로 약물을 투여받았던 혜정이 시설 밖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혜정의 행동이 과잉된 게 아니라 한 인간을 담기에 시설이라는 세계가 너무나 작고 비좁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유튜브 <굴러라 구르님> 채널을 운영하는 김지우(구르님)는 지체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휠체어를 화려하게 꾸미는 일명 ‘휠꾸’ 콘텐츠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외국 생활을 유튜브에 공유하면서 장애를 둘러싼 환경의 차이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김지우는 호주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늘 외부활동에서 낙오되었던 경험 때문에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서핑데이에 참여한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을 가르쳐본 적 있냐’라는 질문에 서핑 강사는 ‘가소롭다는 듯이’(김지우의 자막) 자신은 장애 스포츠 사업을 운영한다며, 능숙하게 장애인 서핑을 지도한다. “못 걸어도 서핑은 할 수 있다, 처음으로 학교에서 낙오되지 않았다”라는 내용의 숏폼 영상은 35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각종 SNS로 퍼져나갔다. 보호의 명목으로 기회를 박탈하고 활동을 제약하는 사회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시설이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시설이 더 낫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자신답게 살아가는 장애인의 모습을,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빈약한 제약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내용을 미디어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탄핵으로 불법 계엄 사태는 끝이 났지만, 일상이 계엄인 존재들의 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혜화동 성당의 고공 농성을 시작한 후로 비가 내리고 기온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지만, 경찰과 성당 관계자들의 제지로 물이나 의약품조차 전달하기 어렵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장애인의 날)에는 고공 농성에 연대하는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혜화동 성당 앞으로 행진했지만, 경찰이 이들을 가로막고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혜화역에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진행하는 출근길 지하철 타기가 진행 중이다. 장애인이 시설 밖으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약자를 지움으로써 유지되는 기만적인 평화를 깨뜨리고, 불편과 불화를 기꺼이 감수하는 관심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