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꿈의 무대로 돌아온 선수들이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을 만들어냈다.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지난해 우승팀인 한국계 교토국제고는 13일 군마현의 겐다이타카사키고를 격파하고 2연패를 향한 스타트를 끊었다. 겐다이타카사키고는 정상급 투수 3명을 앞세운 이번 대회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명투수의 맞대결이 예고된 이날 경기(오전 8시)엔 오전 7시전부터 많은 관중이 몰려들었다.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던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전광판에 지난해 우승 장면이 나오자 잠시 손을 멈추고 화면을 주시했다. “올해도 해내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선취점은 교토국제고가 챙겼다.

1회초, 교토국제고의 좌완 에이스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毅) 투수는 1번 타자를 내야 땅볼로 잡았다. 긴장한 탓에 2개의 볼넷을 내주며 초반 다소 흔들렸지만, 마지막은 헛스윙 삼진으로 막았다.
1회말, 지난해 여름 고시엔을 경험한 하세가와 하야테(長谷川颯)가 중전 안타를 쳤다. 이어 4번 시미즈 우타(清水詩太)가 1사 1,3루에서 초구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켜 선취점을 뽑았다. 교토국제고는 2점을 먼저 따내며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3회초, 니시무라가 폭투와 2개의 데드볼을 던지는 등 제구가 흔들렸다. 2사 만루에서 2루타를 맞아 3점을 내주며 역전을 허용했다.
“주눅 들면 진다, 결코 지지 않겠다”는 투지로 역투한 니시무라는 여섯 번째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곧바로 3회말, 교토국제고 타선은 2점을 뽑아 재역전했다. 동료들의 든든한 지원에 니시무라는 안정을 되찾았고, 4회 이후엔 거의 주자를 내보내지 않았다.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9회초, 투아웃 상황에서 볼넷을 허용했다. “니시무라 힘내라!”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응원이 터져나왔다. 니시무라는 마지막 타자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 6-3 승리를 확정지었다. 1700여명의 응원단은 큰 함성으로 환호했고, 한국어 교가가 올해도 고시엔 구장에 울려퍼졌다. 관중석에서도 큰 박수가 쏟아졌다.
경기 후 니시무라는 “한 수 위로 평가받은 상대를 꺾을 수 있었다”며 솔직한 기쁨을 드러냈다. 1년 만에 고시엔에 복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엔 “올해는 내가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각오로 여기까지 왔는데, 오늘은 오히려 내가 발목을 잡았다”며 “야수들이 커버해줬으니 다음은 내가 분발할 차례”라며 각오를 다졌다. 대회 2연패에 대해선 “중압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지난 1년 동안 준비해 왔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오늘 경기의 160구 완투에 대해서도 “끝까지 던지겠다는 마음으로 던졌다. 피로는 느끼지 않는다”며 다음 경기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에이스가 바꾼 팀의 분위기

지난해 교토국제고는 일본 고교야구 팀 중 가장 긴 여름을 보냈다. 고마키 노리쯔구(小牧憲継) 감독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시작이 늦었던 만큼 성장도 더뎠다”고 돌아봤다. 지난해 가을과 올해 봄, 모두 교토대회에서 16강에 머물며 여름 고시엔 2년 연속 진출에 경고등이 켜졌다.
팀을 바꾼 건 니시무라였다. 훈련 기간 팀원들의 플레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목소리를 냈다. 때론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서도 니시무라는 벤치에서 끊임없이 “나이스 배팅”이라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5회말,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한 내야 안타로 추가점을 올린 주장 구라하시 쇼(倉橋翔)는 경기 후 더러워진 유니폼 차림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니시무라가 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봤기에 그를 믿고 모두가 뒤를 지켰다”고 말했다.
이날 관중석엔 지난해 함께 대회 우승을 일궈낸 졸업생들도 있었다. 대학에 진학한 소네 큐토(曽根球斗)는 니시무라에 대해 “당당하고 차분하게 경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칭찬했다.
라이벌의 존재도 원동력이 됐다. 니시무라는 지난해 여름 고시엔 결승에서 맞붙었던 간토다이이치고(도쿄)의 에이스 사카모토 신타로(坂本慎太郎)와 지난 4월 교환한 글러브를 이번 대회에도 챙겨왔다.

교체 선수·라이벌의 응원도 힘이 되다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한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응원을 이끌었다. 응원단장을 맡은 히즈쿠리 분타(檜作文太·3학년)는 모자 챙에 굵게 ‘柱(기둥)’ 이라고 써 넣었다. “그라운드와 스탠드 사이에 온도 차가 생기지 않도록 내가 버팀목이 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교토대회 결승전에서 끝내기 패배를 당한 도바고 선수 13명도 이날 오전 6시에 교토를 출발해 관중석에 합류했다. 니시무라와 맞대결했던 도바고 에이스 야마시타 코다이(山下航大·3학년)는 “우리는 교토국제고의 끈기와 집중력에 패했다”며 “오늘은 교토국제고를 온몸으로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붉은색 ‘교토국제’ 머리띠를 두르고 메가폰으로 목청껏 응원했다. 구라하시 주장은 “모두의 승리다. 스탠드에서 응원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다음 경기는 16일로 예정돼 있다. 남은 네 경기 끝에 2연패 위업달성이라는 목표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니시노미야(효고)=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onuki.tomok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