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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세계적인 금값 상승 현상은 중국 등 신흥국의 금 사재기라는 ‘상수’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킬 우려가 반영된 ‘변수’가 더해진 결과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금을 무기화하는 흐름이 이어지는 와중에 트럼프 당선 이후 ‘관세 폭탄’ 여파로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짙어지면서 전세계적으로 ‘금을 확보하라’는 치열한 전쟁은 금값을 역사적 고점까지 밀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수요가 지속될지 전망은 엇갈린다.
2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제 금값은 지난해 연말 온스당 2500~2600달러선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올 연초부터 거침없이 폭등해 역사적 고점인 3000달러선을 넘보고 있다. 이는 금값을 설명하는 기존 공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가치 저장수단으로서 달러의 매력이 떨어지면 금 가격이 오르는 게 통념이지만 최근에는 달러도 강세, 금도 강세다.
그 배경에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사재기’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22년~2024년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3년 연속 매년 1000톤이 넘는 금을 사들였다. 특히 튀르키예·인도·중국·폴란드 같은 신흥국이 적극적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된 이유였다. 미국에 의해 해외 자산이 동결된 러시아를 지켜본 각국 중앙은행들이 만일에 대비해 자국에 금을 보관하고 나선 것이다. 샤오카이 판 세계금협회(WGC) 아시아·태평양 책임자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는 미국 달러가 실제로 ‘무기화’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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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무기화’를 주도하는 건 중국이다. 중국인민은행은 2022년 11월부터 18개월에 걸쳐 공격적으로 금을 매입해왔다. 이 기간 인민은행을 비롯한 중국 전 경제주체들이 수입한 금은 2800톤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보유량의 약 3분의1에 해당한다. 인민은행은 지난해 5월부터 6개월 가량 매입을 중단했으나 12월부터 다시 사들였다. 중국 인민은행의 목표는 달러 의존도를 줄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미 정부 채권을 팔고 금으로 대체하는 셈이다. 2022년 중국은 1조달러가 넘는 미 재무부 증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상반기 약 7683억달러로 줄었다.
각국의 금 사재기가 최근 몇년간 금값 상승의 ‘상수’였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를 증폭시키는 최대 ‘변수’ 노릇을 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움직임으로 인해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 수요를 부채질했다. ‘트럼프발’ 인플레이션 우려도 한몫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23일 “인플레이션의 가장 강력한 위험회피(헷지) 수단은 금과 부동산”이라며 “관세 부과는 물론이고 트럼프 행정부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돈을 풀어 미국이 처한 난관을 해결하려고 들 수 있다는 공포가 금에 대한 수요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민간 소비량도 금값에 일부 기여했다. 인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인도 정부가 금·은 수입관세를 대폭 낮추면서 전 세계 금괴가 쏠렸다. 인도에서는 힌두교 최대 명절인 디왈리 축제(10월~11월)에 귀금속 구매가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다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싸진 금값 탓에 지난해 연말 수요는 다소 주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향후 금의 수요 전망은 엇갈린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관세 등 트럼프 정책이 점차 구체화되면서 위험 회피 목적의 금 수요는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신흥국들은 아직 외환보유고 내 금 비중을 확대할 여력이 충분해 이들의 수요는 지속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