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거짓말 안했다 “사전 징후 있었는데”… 강동구 땅꺼짐 사고 ‘인재(人災)’였나 [뉴스+]

2025-03-25

싱크홀 사고 매년 수백건 발생…사망 사고도 이어져

전문가들 “큰 대규모 땅꺼짐은

아래 공사가 원인일 가능성 높아

주변 터널공사 관계자들 사고 전

징후 미리 알았을 수 있어” 지적

‘도로 → 상하수도관, 케이블 매립관 → 지하 공사장’

도시는 층층이 구축된 여러 겹의 지하 세계 위에 형성돼 있다. 이 중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블랙홀처럼 갑자기 지상 위의 물체를 집어삼키는 땅꺼짐(싱크홀)이 발생한다.

지난 24일 서울 강동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땅꺼짐도 층층이 구축된 지하 세계에 대한 관리 소홀이 문제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인근 주유소 지면에 균열이 생긴 건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며 “이번처럼 규모가 큰 대규모 땅꺼짐은 그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던 공사가 문제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공사 관계자, 문제 알았을 가능성 있어”

25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34)씨는 전날 강동구에서 발생한 땅꺼짐에 인해 사망했다. 땅꺼짐에 빠진 지 17시간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땅꺼짐 내부가 침수되고 범위가 점점 커져 구조에 난항을 겪으면서다.

이번 사고는 도로 밑에 있던 상수도관이 파열돼 수돗물이 새어나오면 지반이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는 노후 상수도관 파열과 지하철 9호선 연장 터널 공사 등이 원인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사전 징후가 있었던 점에서 이번 사고를 인재(人災)로 보고 있다. 이달 초부터 땅꺼짐 지점 인근 주유소에선 바닥 균열 민원이 다수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일에는 주유소 바닥 균열과 관련해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에 민원이 접수됐다.

지하철 9호선 감리단과 시공사 측이 2차례 현장을 방문해 확인했지만 지반 침하는 발견되지 않았다. 주유소 내에 계측기 2개소도 추가 설치했으나 사고 당일까지 계측 결과 이상은 없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균열이 난 다음에 계측기를 설치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주변 터널공사 등을 점검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터널 공사 관계자들은 문제를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 원장은 “노후화 된 상수도관 문제라면 지상이 먼저 물바다가 됐을 텐데 이 경우는 지상이 물바다가 되기 전에 땅이 꺼진 걸로 봐서 공사장의 관리 소홀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형 땅꺼짐은 공사가 주원인”

이번 사고 지점 아래에선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표에서 그 아래 있는 공사 터널(7m 크기) 천장까지는 11m, 터널 바닥까지는 20m였다. 땅 표면과 터널 천장 사이의 11m 땅 속에는 상하수도관이 지나고 있었다.

지하철 연장 공사나 건축 공사가 이뤄지는 도심 곳곳에선 시민들이 발 딛고 있는 땅 아래에서 지반을 흔드는 작업이 이뤄진다. 관리가 소홀하면 언제 어디서든 땅꺼짐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지하 공사를 위해 터널을 뚫게 되면 ①인근 지하수의 물이 터널로 새어나오거나 ②물과 흙이 함께 새어나온다. 또 암반이 있는 경우 발파 후 뚫고 들어가는데 ③실제로는 암반이 아니었을 경우 물과 흙이 쏟아지며 땅이 꺼지게 된다.

①의 경우 물이 점차 빠지며 땅이 물렁물렁해지는 전조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하중을 못 이기면 땅이 꺼지고, ②의 경우는 흙까지 점차 소실되다보니 땅에 ‘공동’, 일종의 구멍이 생기면서 꺼지게 된다. ③은 발파로 인해 토사가 꺼지는 경우다. 지반 자체의 문제로 인한 땅꺼짐은 대체로 2∼3m 크기로 발생하지만, 이번처럼 20m 가량의 대형 땅꺼짐은 공사가 문제 원인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관리 소홀이 부른 인재(人災)”

우리나라가 대대적으로 땅꺼짐 관리∙감독에 나선 건 2014년 8월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석총동 땅꺼짐’이 계기가 됐다. 폭 2~3m, 깊이 5m가 넘는 땅꺼짐이 발생해 20대 남성 2명이 추락했다. 다행히 경상에 그쳤다. 인근에선 롯데월드타워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후 2017년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부근에서도 인도 일부가 붕괴돼 여성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지하철 연장공사에 따른 지반 약화가 원인이었다. 2021년 6월 부산 동래구 명장동에서는 대형 땅꺼짐이 발생해 차량 1대가 구멍에 빠졌다. 다행히 사망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땅꺼짐 사고는 2085건에 달한다.

특히 하천이나 늪지, 갯벌, 논 등이었던 곳을 매립하거나 땅을 덮어 만든 매립지의 경우 지반이 더 취약하다. 과거 한강과 석촌호수 일대 습지였던 송파구 일대가 대표적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7∼8월에 땅꺼짐 발생율이 올라간다.

조성일 원장은 “서울시에서 이런 지역을 대상으로 GPR(지하레이더) 탐사 등을 통해 면밀히 관리하고 있지만, 지하철이나 건축 공사장에 대해선 관리가 소홀한 측면이 있다”며 “대비 규정이 있어도 현실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주유소 빗물받이가 파손된 상황에선 공사 감리와 시공사가 부실 공사 여부를 들여다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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