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까지 '패키지 딜'?…관세협상 앞둔 한국의 딜레마

2025-04-15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다음 주 무역 협상을 진행할 예정"(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14일)이라고 밝힌 가운데 최우선 협상 상대가 된 한국은 '양날의 검'을 쥔 형국이 됐다. 한덕수 대행 체제에서도 협상 우선권을 인정받은 건 다행인 측면이 있지만, 유예기간 90일 안에 협상을 마무리해야 하는 마감 기한이 있는 데다 안보 문제와 직결되는 방위비와 관세를 연동하는 '패키지 딜'로 추진될 경우 협상의 난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韓, 성과 도출 의지 강해"

15일 관련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은 "통상 전문가임을 자부하는 한 대행이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한 대행은 전날 국무회의에서도 "이제 미국 정부와 본격적인 협상의 시간에 돌입했다"며 "그간의 통상 경험을 바탕으로 마지막 소명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과도 정부로서 협상에 나서는 건 한계가 명확하고, 새 정부에 부담을 줄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설계한 관세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죄수의 딜레마' 구도에서 출발선에 설 기회를 놓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 한 대행이 지난 8일 트럼프와 통화에서 조선업,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의 대량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등 트럼프의 구미를 당길 만한 '쇼핑 리스트'를 선제적으로 던진 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제안에 대해 이튿날 트럼프는 "훌륭한 합의의 윤곽과 가능성이 있다"고 반응했다.

베센트 장관이 예고한 대로 한·미는 다음 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주축으로 한 고위급 협상을 앞두고 있고 이번 주부터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한 실무급 화상 회의도 시작된다.

동맹·우방 5개국 포함 청신호

한국이 일본, 영국, 호주, 인도 등 미국의 명확한 동맹·우방과 함께 5개국의 '최우선 협상 목표'(top targets)에 이름을 올린 점도 부담을 덜어주는 요소다. 미국이 대선을 두 달 앞둔 한국의 국내정치적 상황을 자국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거란 관측도 나온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최우선 협상 목표로 동맹·우방만 골라 택한 배경에는 관세를 고리로 격돌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속내도 엿보인다. 중국의 맞대응이 예상보다 거센 가운데 국내적으로도 국채와 주식 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등 수세에 몰린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상대적으로 쉬운 협상부터 타결하는 동시에 관세 부과에 불만을 품은 동맹과 우방이 중국 쪽으로 기우는 걸 막겠다는 의도도 있는 셈이다.

다만 트럼프가 언급한 이른바 '원스톱 쇼핑'(One Stop Shopping) 협상은 관세와 방위비를 연계한 방식이라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여타 국가와의 협상과도 결이 다를 전망이다. 관세를 무역·통상뿐 아니라 정치·외교·안보까지 아우르는 만능의 보검처럼 다루는 트럼프가 주한미군까지 협상 수단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지난 9일(현지시간) 해외 주둔 미군에 대해 "무역과는 관계가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개의 패키지로 다 담는 것이 합리적이고 깔끔하기 때문에 협상의 일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미국은 한국에 대규모 군사 보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며 한국을 잔뜩 압박한 직후였다.

"거절은 옵션 아냐…한국도 과감해져야"

정부 내에선 성격이 전혀 다른 관세와 방위비를 연계해 협상을 타결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외교가 일각에선 어차피 올려줄 방위비라면 트럼프의 말대로 '패키지 딜'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는 통상 현안과 관련 없는 이슈까지 한꺼번에 협상 테이블에 올려 통으로 거래하자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한국이 '사안별로 따로 하자'고 말해봤자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위비 인상은 결국 피하기 어려운 만큼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 미국의 전술핵 현대화에 투자하고 그 대가로 핵 방어 역량 강화 등 전향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세를 무기로 한 성과 도출에 혈안이 된 트럼프를 상대하려면 방위비 인상은 감수하되 그에 상응하는 실익을 챙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이 방위비 인상 외에는 관세 인하를 끌어낼 만한 마땅한 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바꿀 수 없는 부분은 수용할 필요가 있다”며 “기회의 창이 열린 이상, 크게 주고 크게 받는 과감한 대응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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