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꽃길만 걸으세요

2025-10-27

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농장에서 전화가 왔다. 국화가 이르게 피었으니 내어가겠다는 말이었다.

콘크리트와 시멘트에 둘러싸여 생활하면서도 꽃을 그리워하다 보니 이웃의 농장 하는 이와 인연을 맺어 철 따라 계절을 느끼게 하는 화분들로 가게 주변을 채우게 되었다. 지난 겨울에는 주차장 한켠의 매화나무들이 손님들의 관심과 흥미에 기분이 좋았던지 폈다 졌다 여러 번 꽃을 피워 보는 이들을 놀라게도 했었다.

조금 이르게 들여오기는 했지만 국화는 물만 잘 주면 한두 달 이상 피어있으니 가을 내내 보는 눈이 즐겁겠다 싶었다. 요즘에는 손님이 붐비지 않는 시간이면 국화 옆 긴 의자에 앉아 꽃을 배경으로 오가는 이들을 감상하기도 한다. 한 폭의 움직이는 그

림을 보는 것 같다.

가깝고 먼 곳에서 가을 꽃축제가 한창이지만 밥벌이에 파묻힌 사람들은 시간 내기가 여의치 않다. 그래도 이렇게 알록달록한 국화 화분 사이에 자리잡고 앉으니 가을에 풍덩 빠진 기분이다. 시끌벅적했던 여름이 언제였나싶다.

산야에 피어난 들꽃, 정원에 가꾸던 모든 화초들이 시들어가는 때에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피어나는 꽃. 그래서 누이를 닮았다고 했을까? 대기만성의 꽃이니 나도 한 번쯤 꽃 피울 때가 있겠지, 아직 내게 서리가 내려앉지 않은 까닭이겠지 위안을 삼으며 꽃잎을 만지작거린다.

그런데 국밥집 아줌마와 꽃이 그리 안 어울리나? 국화 옆에 앉은 나를 두고 짓궂은 손님들은 ‘이런 거 좋아하게 안 생겼다’며 빙글거리기도 한다. 국밥집 아줌마는 꽃을 보고도 먹는 생각만 해야 하나? 물론 진달

래떡, 국화떡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

우리 집에 들어오는 국화 화분은 워낙 커서 농장주께서 배달에 고생이 많다. 올해는 배 이상 많은 국화 화분을 설치하느라 애 많이 쓰셨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온 우주가 관여한다. 봄부터 소쩍새는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울며 밤에는 무서리가 내리는 자연의 인연도 무척 중요하지만, 멀리 꽃축제 찾아가지는 못해도 점심시간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잠시 짬을 내어 이 짧은 길을 걷는 왱이집 손님들을 위해 일 년 내내 철 따라 가장 예쁜 꽃을 준비하는 농장주께도 정말 감사드린다.

왱이집 앞마당에도 우주가 있다.

손님들은 늘어선 국화 화분 사이를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 젊은 손님들이 만추의 흥에 겨웠는지 활짝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한 사람이 부르던 노래가 금방 합창

이 되었다. 우리 때는 국화를 보면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하는 가곡을 떠올렸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꽃길만 걷게 해줄래’를 외친다. 그러고 보니 국화 화분이 나란히 늘어선 가게 앞이 말 그대로 꽃길이다.

꽃과 더불어 만개한 미소를 보니 행복은 전염된다는 말이 참으로 맞구나 싶다. 가슴이 뭉클해져 힘차게 인사를 건넸다.

“이 좋은 계절, 꽃길만 걸으세요.”

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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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걸으세요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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